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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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0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 김훈일 세례자 요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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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6-20 ㅣ No.112723




2017
06 20 () 가해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코린토 2 8,1-9

마태오복음 5,43-48


김훈일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원수를 사랑하라 >


원수지간으로 지내는 이들을 보거나 내가 원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과연 인간에게 진정한 용서가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은 대부분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거나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도 멀리 있는 사람도 아니고 내 삶의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멀리서 던지는 비수는 옆구리를 스치지만 가까이에서 던지는 비수는 가슴을 찌른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누구에게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가를 생각해 보면 가족에게서 받는 상처가 가장 오래 가고 치유하기 힘이 듭니다. 대부분의 원수는 사랑해야 했거나 사랑받아야 했던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집니다. 즉 사랑의 실패가 원수를 낳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를 없애는 길은 다시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입니다. 다시 원수를 사랑하려면 우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계속 개발하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해야 합니다. 용서의 힘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의 힘도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 다음 원수의 악한 행동 즉 우리에게 상처를 준 행동이 결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사람의 인품은 두 마리가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쌍두마차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죄는 있지만 악인은 없습니다.


<
원수 사랑 >


살아가면서 마음에 쏙 드는 사람만 만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쁘고 선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상처 주고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로 상처 주고 미워하다가 죽기를 바라는 원수가 생기기도 합니다. 죽도록 미운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이고 원수만 좋아지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용서라는 것은 결코 원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용서했다고 또는 안 했다고 해서 원수에게는 어떤 이익이나 손해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그 원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와 증오심으로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자신의 죄악을 돌아보라는 말씀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셨으니 죄악이 우리를 해치기 전에 주님이 내미신 용서의 손길을 잡고 이웃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용서할 때 우리의 삶은 진정 아름다워집니다. 용서가 가장 큰 승리입니다.


김훈일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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