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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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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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2-20 ㅣ No.110227

 

2017년 2월 20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집회 1,1-10

1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2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3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4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명철한 지각도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다.

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6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7 지혜의 슬기가

누구에게 나타났으며,

혜의 풍부한 경험을

누가 이해하였느냐?
8 지극히 경외해야 할

지혜로운 이 한 분 계시니,

당신의 옥좌에

앉으신 분이시다.
9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알아보며 헤아리실 뿐 아니라,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에,

10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복음 마르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중동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산이 움직였다고 하면 믿어도,

사람이 변했다는 말은 믿지 말라!”
살면서 우리들은 자신의 변화를

다짐하고 약속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계속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는 또 다시 유혹에

쉽게 넘어가곤 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을 굳이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내 자신만을 살펴보아도

그런 일들은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그만큼 인간이란 존재는

부족하고 나약합니다.
이렇게 변하기 힘든 사람이지만,

하느님은 그런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예를 성경 안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어

멋있는 삶, 정말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하느님 안에서

깊은 회개를 하고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변화되기는

 힘들지만, 하느님을 통해서는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의지하고

믿음을 두고 있는

때에는 어떨까요?

그만큼 변화되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떤 자매님께서 하는

일마다 꼬이는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점쟁이는 이 자매님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가 끼었어.

50대 내내 조심해야해!”
이때의 자매님 나이가 50대

초반이었는데, 50대의 10년 동안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요?

듣지 않았으면 어렵고 힘든 일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난 후에는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냥 버틸 수밖에 없어.’

하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쉽게 포기했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이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주님은 세상의 유혹들과 달리

포기와 절망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희망과 꿈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믿음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도들의 믿음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다는 것은

믿음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믿음입니까?

바로 완전한 믿음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아니라,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완전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가 쉬울까요?

시시때때 흔들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자는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

(제롬 블래트너)

우리들의 믿음을 더하기 위해

성모님께도 청하십시오.

"95세 생일날"

(조한규, ‘무엇이 인생을 바꾸는가’ 중에서)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씨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95세 노인의 수기’라는 글이다.
“나는 65세에

직장에서 정년퇴직했습니다.

30년 전이지요. 명예퇴직이나

구조 조정 같은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 때도

내가 끄떡없이 버틴 건

직장에서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젊을 적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그 덕에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선 조금 더 기회를

주려 했지만 사양했어요.

 연금 받으며 안락한 삶을

 즐기다 남은 인생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세 생일날 자식들에게

케이크를 받는 순간,

얼마나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그 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비통했습니다.
나는 정년퇴직 뒤에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생은

덤으로 주어졌을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허송세월했던 것입니다.

덧없는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지금 내 나이 95세로 따져

보아도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시간입니다.

95번째 생일을 맞으며

가장 후회한 것은 왜 30년이라는

소중한 인생을 무기력하게

낭비하며 살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건강하고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고 싶었던

어학 공부를 할 것입니다.

내가 혹시 10년 후에라도 왜

95세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8년 뒤 눈 감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영어 공부를 했다.
지금의 내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10년 후에 남길 후회를

없애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호서대 설립자 강석규 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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