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10.15 주일/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태도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스크랩 인쇄

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10-14 ㅣ No.115434




가해 연중 28주일(17.10.15)
이사 25,6-10ㄱ; 필리 4,12-14.19-20; 마태 22,1-14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마태 22,9)





The Parable of the Wedding Feast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태도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실 것입니다.”(이사 25,6)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써 ‘모든 사람들을’ 당신 ‘아들’의 성대한 ‘혼인’ 잔치, 곧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가 잘 말해주듯이, 유대인들과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초대를 거부하여 영광의 표징인 예루살렘은 물론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임금은 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을 부르러 두 번이나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심을 끈 채’ 자기 할 일만 하였으며, 종들까지도 죽여 버립니다.

이에 임금은 진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마태 22,7). 그리고는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하며,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하지요. 결국 잔칫방은 손님으로 가득 찹니다. 그렇게 하느님 나라의 새롭고 아름다운 창조와 풍요가 넘치게 된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죄 중에 있든 은총 중에 있든, 잘 살든 못 살든, 신분이 어떻든 늘 하느님으로부터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오늘 복음에서 먼저 ‘초대받았으나 거절한 이들’처럼 구원의 잔치에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현세의 자기 일에만 몰두하여 살아갑니다. 매순간이 놀라운 풍요와 행복으로의 초대임에도 자신에 몰두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보다 자기 뜻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서곤 합니다. 늘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느라 너무 바빠 하느님과 차 한 잔 나누며 ‘구원의 정담’을 나눌 여유가 없습니다. 머리로는 주님이 가장 중요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실제 행동할 때는 주님을 첫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보다 그분의 사랑의 초대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이유를 더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몰라서 응하지 못했고, 알지만 바빠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했으며, 잊어버려서 초대에 응하지 못했고, 누구 때문에 기도시간을 놓쳤다고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모른 척 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까지도 있지요.

만일 그렇게 살아간다면 혼인잔치에 초대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손발이 묶여 어둠 속으로 내쫓기듯 그런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으려면 잔칫상에 앉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나아가 하느님께서 초대하신 잔치에 합당한 ‘삶의 예복’을 갖추며 살아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잔치에 걸맞는 예복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행함, 아버지의 뜻을 행함, 의로움을 행함,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 자비를 행함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하늘의 아버지의 뜻을 채운 사람만이 영원한 잔칫상에 참여할 준비를 함으로써 뽑힌 이들의 대열에 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모두 그 어떤 차별 없이 매순간 영원한 생명과 기쁨의 잔치에 초대받고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습니다.”(22,14) 구원은 그렇게 하느님의 초대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부르심을 알아듣고 감사드리며 내 생의 가장 으뜸가는 소명으로 삼아 응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협력 없이 우리를 창조하셨으나, 우리의 협력 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다.”(아우구스티누스)는 말을 기억하며, 합당한 삶의 예복을 갖춰 입고 하느님의 사랑의 초대에 온 힘을 다해 응답하는 ‘신자다운 신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1,062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