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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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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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4-26 ㅣ No.129307

 

2019년 4월 26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제1독서 사도 4,1-12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복음 요한 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한 10년 전쯤에 있었던 아주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릅니다.

사건의 발단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나가다가

다른 차와 추돌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속도를 낼 수 없는 주차장에서

일어난 일이라 인명 피해가

있었던 일도 아니고,

또 차가 심하게 부서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서

상대 운전수를 향해서

 “갑자기 들어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라고 화를 냈지요. 그런데 그분께서는

“아니 그쪽도 전방 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잘못했는데

왜 제 탓만 하시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남 탓을 하지 말자.’고 묵상 글에도

종종 썼으면서도, 저는 상대방의

안위를 먼저 묻기 전에 상대방 탓만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고,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고 보험사에 처리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보험회사 직원도 “상대방의 잘못이

더 큰데 왜 본인이 다 잘못했다고

하십니까?”라고 말했지만 ‘남 탓’을

한 부끄러운 행동 때문에 모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떳떳하게 살자.”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 탓을 외쳐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순간의 만족을 위한 삶,

지금을 잠깐 모면하기 위한

삶은 크나큰 부끄러움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우선하는

떳떳한 삶은 지금을 힘차게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베드로, 토마스, 나타나엘,

제베데오의 아들들,

그리고 다른 두 제자. 총 7명입니다.

유다를 뺀 11명 중에서 7명이면,

제자들의 대부분이 좌절에 빠진

상태에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시 좌절하지요.

예수님을 따르기 전의 직업으로

다시 복귀했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기를 잡는 것을

도와주시지요.

 바로 그때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베드로는 호수로 뛰어듭니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그랬을까요?

주님을 배신한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배신을 했다고

혼내시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지키지 않았다며 

뭐라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와서 아침을 먹어라.”

라고 하시면서 사랑으로

제자들을 보살펴주십니다.
떳떳한 삶은 사랑을

간직했을 때에 비로소 환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우리 역시 사랑을

간직하고 세상에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떳떳하고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일하는 기쁨이

그 일을 완벽하게 해 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세 번째 제자들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언제가 좋은 시간인가?

올해에는 작년보다도 더 많은

책을 읽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간만 나면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또 할 일이 있어도

짬짬이 시간은 분명히 있었고,

실제로 작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시간을 내어서

성지를 떠나 조용한 곳에 가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성지를 떠나서 책 읽고 글만

겠다고 했던 이틀 동안

 얼마만큼의 책을 읽고

 글을 썼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바쁘고 일이

 많았을 때보다도 훨씬 더 적은

양의 책을 읽었고 글도

조금밖에 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다고 해서

 생각했던 것들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유시간이 하루에 7시간

이상이면 오히려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일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바쁘고 힘든 상황 역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때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막달라 성당의 제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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