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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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앎 속에 굳건한 믿음이 / 사순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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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8-03-16 ㅣ No.11902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 이야기이다. 그는 젊은 시절 러시아의 반정부 비밀 결사대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시베리아 움스크 감옥에서 수형 생활을 했다. 그곳에는 읽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경 한 권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성경을 여러 번 탐독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무신론자였던 그의 삶이 바뀌었단다. 그가 발표한 그 유명한 죄와 벌은 이렇게 하느님을 새롭게 조명한 후 발표한 문학 세계의 모습이다.


다음은 갓 천주교 신자가 된 이와 신자가 아닌 친구와의 대화이다. “그래, 자네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다지?”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관해 꽤 알겠군. 어디 좀 들어 보세. 그분은 어디에서 태어났나?” “모르겠는 걸.” “죽을 때는 나인 몇 살이었지?” “모르겠네.” “설교는 몇 차례나?” “몰라.” “아니,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다면서, 정작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러자 신자인 그 자가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분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 부끄럽구먼. 그렇지만 이 정도는 알지. 3년 전, 난 주정뱅이였고 빚을 지고 있었어.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어 가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돌아오는 걸 무서워하고 있었던 걸세. 그러나 이젠 난 술을 끊었고, 빚도 다 갚았다네. 이제 우리 집은 화목한 가정이라네. 저녁마다 아이들은 내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지라 기다리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신 걸세. 이만큼만 난 그분을 알고 있다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8-29 참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유다인들과 직접 맞서시며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밝히셨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겉모습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깊은 인격적 만남을 뜻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려면 먼저 그분을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삶을 본받아 투신하는 선택이 따라야만 할 게다. 그분을 제대로 알면서 온전히 따르는 것은 올바른 신앙에 이르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까? 어떻게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분을 깊이 깨달을 수 있을지? 성경에서 안다.’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안다.’의 의미를 훨씬 넘는 깊은 인격적 만남을 말할 게다. 이런 앎은 바로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하는 데서 나온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면 하느님을 모르는 것이란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탓한다. 그렇다면 나름나름 시간을 만들어 성경을 읽어보면 마음이 다소 위안될 게다. 성경 묵상에서 그분을 알게 되고 어느새 마음의 눈이 열리리라. 진정한 앎은 굳건한 믿음을 준다. 우리의 이 믿음은 사랑실천으로만 완성된다. 아는 만큼 믿고, 믿는 만큼 사랑 실천을 할 수가 있기에.

 

알기에 내가 달라지는 것, 그것이 참으로 안다는 메시지일 게다. 예수님을 잘 안다는 것은 사랑 실천으로 봐야만 한다. 그분을 앎은 그분 지식만을 머릿속에 많이 쌓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깊은 신뢰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예수님을 알기에 가치관이 바뀌고 그분 때문에 삶이 충만해지리라. 굳건한 믿음은 실천적 사랑으로 달성될 게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 그분을 잘 알고 있을까? 행동하는 양심, 그게 실천하는 믿음이리라. 이게 성경의 시작과 끝이요, 신앙인의 삶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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