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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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욱 신부의 {내맡긴 영혼은} 잘못에대한지적(指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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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다 [pharm8891] 쪽지 캡슐

2017-08-11 ㅣ No.113793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잘못에 대한 지적(指摘)이나 야단(惹端)까지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2010, 9, 30)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옮긴이- 2010년 9월 30일) 약 3개월 동안
지리산의 <마리아처럼>을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이용하셨습니다.
아마, 5, 6백 명은 족히 이용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무료 기도원"을 이곳 지리산 청학동에
세워주신 하느님의 뜻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가신 많은 분들이 정말로 편안한 마음으로
영육을 쉬고 감사한 마음을 안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볼 때
더욱 하느님께 큰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은 <마리아처럼>을 어느 등산길에 있는
"무료산장" 정도로 여기는 분도 없지 않으십니다.


 "오고 가는 방법"이나, "이용방법" 등이 잘못 되어 그것을 지적해 드리면,
어떤 분들은 그것을 참으로 기분 나쁘게 여기십니다.


반대로 어떤 분들은 잘못을 지적해 드리면,
"아, 제가 카페의 이용 안내문을 잘 읽어 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그 지적을 당연하게 잘 받아들여 주십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 교우들에게 가끔 듣기 싫은 소리를 드리게 되면
그때에도 두 가지 모습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 싫은 소리를 잘 받아들이는 분이 계시는 반면,
어떤 분은 듣기 싫은 소리를 아주 언짢게 받아들이십니다.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도 그런 소리를 듣지 않는데 왜, 성당에서
그런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성당으로의 발길을 끊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더 나아가 "야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야단"은 惹-이끌 야, 端-단정할 단,
"단정함으로 이끈다"는 뜻입니다.


시뻘건 현대에 옛날이야기를 끄집어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옛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잘못을 했을 때, 신부님들로부터
"종아리"를 맞으셨습니다.


군종신부 시절, 강원도 어떤 마을의 구교우촌에 있는 공소에 들렸는데
그곳의 할아버지들로부터 신부님께 종아리를 맞고 자랐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도 소신학생 시절, 잘못했을 땐, 신부님들께 맞고 자랐습니다.
대신학생 때는 선배들에게도 맞습니다.


제가 듣기에, 현재도 프랑스를 움직이는 소수의 엘리트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맞고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내맡긴 영혼들"도 맞고 자라야 한다면 잘못된 말일까요?
내맡긴 영혼은 영혼의 성장을 위하여 "영적인 매"를 맞아야 합니다.
영적인 매가 바로 "영적지도"입니다.


잘못에 대한 "지적이나 야단"이 자신이 생각으로 잘못된 것이라도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그대로 받아 감사히 수용하시길 바랍니다.
그 수용이 내맡긴 영혼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며,
그 수용이 또 하나의 다른 "순명(順命)"이 됩니다.


지적과 야단을 맞는 것도 하나의 "큰 배움"입니다.
소신학생 시절 신부님들의 지적과 야단을 맞을 때, 저는 변명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쿵 저러쿵 변명하는 것이 좀 좀스러워 보였기에
야단을 맞게 되면, "잘못했습니다, 신부님!"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옛날에는 잘 모르는 어른이 야단을 쳐도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지금은 그랬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영적인 차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서라도 충분히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는데,
왜, 싫은 소리를 들어!"
야단이 싫어 본당 교적까지 바꿉니다.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누구보다 더 우월하다는 무의식의 표출이
곧 "교만"입니다. 그 교만으로 지적이나 야단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를 통해 내맡김의 봉헌을 하신 분은 저의 영적 제자입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무엇이 더 뛰어나서 "보조교사"가 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많이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똑같은 내맡김의 왕초보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여러분보다 조금 더 일찍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 뿐,
다른 그 무엇도 여러분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첫째가 꼴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초보시기에는 저의 보조적 영적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저의 영적 회초리에 순순히 종아리를 걷어 올리는 영혼만이
참 스승이신 예수님의 지혜를 받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적과 야단을 한다 하여도 "성(聖)스럽게" 지적과 야단을 쳐야 한다고요?
저는 아직 성인(聖人)의 발치에도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감히 확언합니다.
성인들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거룩하게" 야단을 치신 줄 아십니까?


눈물이 납니다.
콧물이 날 정도로 매섭게 매섭게 야단을 칩니다.
영화 속의 오상의 비오 성인은 정말 끔찍한 성격이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나무랄 때, 거룩하게 야단치셨나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까지 매우 심한 욕을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입니까? 아닙니다.
베드로 안에 "사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성스럽게 야단치셨습니까?
아닙니다. "이 독사의 족속들, 회칠한 무덤들"이라고 엄청 심한
욕을 하셨습니다.


제가 예수님과 성인의 예를 들어서 크게 죄송하지만,
한 선생 밑에서 배우는 모든 학생은 그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으려면
지적을 받든 야단을 맞든 그 선생의 방식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식의 지적과 야단이 맞지 않으니 다른 식으로 지적과 야단을
쳐 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싶으신 분은 제가 주방장이 아니니 구미에 맞는
다른 식당을 이용해 주시면 정말로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아직 정화가 덜 된 저의 영적인 매가 가당치 않다고 생각되는 분은
얼마든지 부담 없이 조용히 저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은 제가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의 "영적성숙을 위한 지침"이 되게 하기 위하여
정말 "거룩한 마음"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http://cafe.daum.net/likeamaria/


(소리로 듣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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