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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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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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6-17 ㅣ No.130433

 

2019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코린 6,1-10

형제 여러분,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과거의 일들이 떠올려 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상상을 해 봅니다.
‘그때 만약에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렸을 때 운동선수가 되고 싶어서

 운동부에 가입해서 열심히 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수학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수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계속

이어갔다면 어떠했을까요?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계속해서

매달렸다면 어떠했을까요?

잠시 냉담을 하던 중에 친구를 따라서

성당에 가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냥 평범한 본당신부만을 꿈꾸면서

아무것도 하지 안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마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없었을 것입니다.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빠다킹 신부라는

애칭으로 이곳저곳 강의도 하고 글을

쓰는 모습을 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저를

좋은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 인도를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보다는 나의 편안함만을

추구하게 될 때,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게 될 때, 남과 비교하면서

불평불만에 빠져 있을 때,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내 뜻만을

내세우게 되었을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때에는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끌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어렵고 힘든 삶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랐을 때에는 새로운 길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끄심에 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굳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은 주님의 뜻을 따라갈 때에만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의 뜻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떻습니까? 이 말씀을 잘 따르십니까?

만약 이렇게 한다면 이 세상을 온전히

살 수가 없을 것이라면서 따지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의

손해와 피해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천하는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의 흐름에 맞춰

 살지 못하는 사람처럼 비춰지겠지만,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가장 큰 기쁨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얼마나

 따르고 있었을까요? 주님께서

이끌어주시는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람들은

보통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에 반대하기

위해서 투표한다.

(윌리엄 먼로)

(사랑으로 안아주세요)


어떤 것을 보고 있습니까?

인터넷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새벽에 묵상 글을 올리고

카페의 가입인사와 미사 지향만

확인하고는 꺼버립니다.

그 뒤로는 인터넷 접속을 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쁜 이야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쁜 이야기는 관심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가 않습니다.

남에 대한 부정적인 말,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말, 연예인들에 대한 안 좋은

말 등은 기분을 그리기 좋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화도 나게 합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나쁜 이야기가 세상에는

 많고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요?

어쩌면 부정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타인의 반응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러한 글을 올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다보니 인터넷을 웬만하면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부터 좋은 이야기에

집중하고 좋은 말을 하는데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나쁜

이야기보다는 좋은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일보다도

긍정적인 일이 무궁무진합니다.
어느 곳을 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새롭게 본당을 이전한 인천의 구월동성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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