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릴 적부터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합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하실 수만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주십시오.”(9,22) 하고 말씀드리며 치유를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9,23)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이는 것들에 사로잡히고,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며 살기에 미지근하고 불확실한 믿음에 머물 때가 적지 않지요. 그렇게 하느님보다 세상의 힘을 믿으며 세상것을 소유하려고 애쓰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며 행복에서 멀어져갑니다.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믿음은 영원한 사랑과 생명이신 분과 나를 이어주는 행복의 다리입니다. 믿음은 모든 영성생활의 뿌리이자 조건이지요. 믿음이 확고해질수록 희망은 더욱 굳어지며, 사랑 또한 더욱 생생하고 순수해집니다. 이처럼 믿음이 확고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것은 단순한 믿음을 넘어 하느님께 신뢰하고 철저히 내맡기는 선택과 결단을 뜻합니다. 이렇듯 확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능하신 분을 소유하려면 그분을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안에 계신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이지요.

한편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할 수 없다.”(9,29) 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을 갖고 기도할 때 하느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습니다(9,23.29). 믿음과 기도는 뗄 수 없지요. 믿음이 없다면 기도는 사라져버리므로, 기도하기 위해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기도를 샘솟게 하고, 샘솟는 기도는 믿음을 튼튼하게 해 줍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115,1)

믿음이 없는 기도는 진실한 기도가 아니며, 기도하지 않는 믿음 또한 헛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믿음과 삶의 가치를 뒤흔드는 오늘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믿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도하며 확고하게 믿음으로써 나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했으면 합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주님께 돌아갑시다. 믿음의 힘은 사랑의 힘을 키우며, 사랑의 힘은 믿음을 키웁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으로 기도하고 믿음을 확고히 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루는 복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과 영원한 계명을 확고히 믿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가 항구히 기도하며 주님을 믿고, 온전히 내맡기기만 하면, “주님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집회 1,10) 지혜의 선물을 거저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와 믿음 안에서 일어나는 삶의 경이로운 은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