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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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11 -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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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8-10 ㅣ No.113788




2017
08 11 () 가해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복음 묵상


신명기 4,32-40 / 나훔서 2,1.3; 3,1-3.6-7
마태오복음 16,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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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신명기 4,32-4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5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36 그분께서는 너희를 깨우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당신의 소리를 너희에게 들려주셨다. 또 땅 위에서는 당신의 큰 불을 너희에게 보여 주시고, 너희가 불 가운데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해 주셨다.
37
그분께서는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으므로 그 후손들을 선택하셨다. 그분께서는 몸소 당신의 큰 힘으로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38 그리하여 너희보다 크고 강한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내쫓으시고, 너희를 이 땅으로 데려오셔서, 오늘 이처럼 이 땅을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이다.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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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나훔서 2,1.3; 3,1-3.6-7

1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불한당이 다시는 너를 넘나들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망하였다.
3
약탈자들이 그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포도나무 가지들을 망쳐 버렸지만, 정녕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예처럼 야곱의 영예를 되돌려 주시리라.
3,1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온통 거짓뿐이고 노획물로 가득한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다. 2 채찍 소리, 요란하게 굴러 가는 바퀴 소리, 달려오는 말, 튀어 오르는 병거, 3 돌격하는 기병, 번뜩이는 칼, 번쩍이는 창, 수없이 살해된 자들, 시체 더미, 끝이 없는 주검. 사람들이 주검에 걸려 비틀거린다.
6
나는 너에게 오물을 던지고 너를 욕보이며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7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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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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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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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11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상천하의 대권을 지니신 하느님을 섬기도록 당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하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갚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겪는 고통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죄인처럼 멸시 받고 모욕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십자가는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빛이라는 뜻을 지닌 ‘클라라’ 성녀는 아시시의 귀족 파바로네 가문 출신이지만, 복음의 가난을 따르려고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였습니다. 성녀는 수도원 장상이었지만 비천한 여종처럼 수도원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복음의 약속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진 성녀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한 기적, 1252년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영적 투시로 보는 기적 등을 일으키셨습니다.
성녀는 수도 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서 보냈지만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녀는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복되신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궁핍과 고생, 시련과 수치, 세속의 멸시, 그 어느 것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더 없는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을 보셨을 때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성녀의 유언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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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05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먼저자신을 버린다는 것자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정이란 자신을 과시하려는 욕망이나 이기주의와 같은 유혹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지요. 아울러 자신의 의지를 주님의 뜻에 맞추는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불편과 오해, 불이익, 희생마저 감당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자신이 져야만 하는 십자가가 아니겠습니까?
이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과거 수많은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위해 육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늘 우리 마음에 살아 있지요. 나아가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의 생명만을 유지하려고 비굴한 행동을 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비록 육신의 생명은 유지했지만, 우리 마음에서 잊히거나 죽은 이들로 남아 있을 뿐이지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렸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길을 택한다면 그 과정은 외적으로는 고난과 가시밭의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우리 내면에는 평화와 기쁨이 가득 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참으로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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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07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나 때문에.” 이 구절이 없으면 오늘 복음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자기 목숨을 버리며, 자신보다 이웃을 앞세우라고 말씀하시니, 그분을 따르는 것은 손해가 막심해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제 목숨을 잃으면 소용이 없고, 제 목숨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까지 말씀하시고서자신을 버리라.’고 하시니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여하튼 복음은 자신을 버리라고 하고,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비우셨다고 선포합니다(필리 2,7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버림과 비움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도, 고통 그 자체를 추구하고 즐기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 소중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자신을 버리라고 명하시는 것은, 바로나 때문에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당신의 부활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른 아침 동이 트기 전, 캄캄한 하늘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밤이 없이 어떻게 아침이 올 수 있겠는가? 죽음이 없이 어떻게 부활이 있겠는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도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합니다. 삶 안에서 가끔 맞닥뜨리게 되는 죽음의 그 순간에, 기꺼이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을 수 있는 은총과 용기를 주시어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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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08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성인들의 초상은 뛰어난 화가들에게 매우 좋은 소재였습니다. 그들의 손에서 성인들의 모습을 담은 많은 걸작이 탄생하였고, 그 작품들에서 사람들은 인생과 신앙생활의 고비를 넘게 하는 위로와 통찰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도미니코회 수도자이자 화가였던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수도회의 창시자 도미니코 성인의 초상화가 그렇습니다. 그림에 나타난 겸손하고 청순한 도미니코 성인을 바라보면 혼란스러운 생각과 들끓던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가라앉고 다시 밝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피렌체의 도미니코회 산 마르코 성당에 있는 이 그림은모욕당하시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며, 화가가 함께 사는 수도회 형제들의 묵상을 돕고자 그린 작품입니다.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는 성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평생 보여 준 투신과 가난과 겸손의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도미니코 성인이 평생 소명으로 삼은 것은 삶으로복음의 진리를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의 진리만이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길을 비추어 준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도미니코 성인은 당시에 창궐하던 이단에게서 신자들을 보호하고자 주로 교육과 설교를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말보다는 삶으로 증언하는 진리, 가난하고 진리에 목마른 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만이 오류에 빠진 자들을 위한 치유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제가 되고자 학업에 전념한 젊은 시절 스페인에 지독한 기근이 들자 주저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자신의 책을 팔면서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형제들이 굶어 죽어 가는데 죽은 양피지로 만든 교과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도미니코 성인을 기리는 오늘, 우리는 진리에 대한 열정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주님의 사람들이 이 시대의 교회에 더 많아지기를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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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09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걸림돌이 아니라반석이 되려면 예수님의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묵상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 뒤를 따르는 방법을 일러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첫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에서 보듯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겪는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과 고통을 달갑게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십자가는 사형수들이 지는 형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칭찬과 격려가 아닌, 손가락질과 비방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목적지가 골고타 언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도착하신 곳은 사형이 집행되는 골고타 언덕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온전히 자신을 비우겠다는 결심 없이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희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참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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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 10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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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05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신부들은 죽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자는 저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미션의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대사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이 영화는 1750년 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 부근의 과라니 부족에 있었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만든 영화입니다.
그 마을에는 예수회에 소속된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가 원주민들에게 신앙을 심어 주며 선교사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토 분계선이 새롭게 그어지면서 과라니족 마을이 노예 제도를 합법화하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편입됩니다. 교회는 포르투갈과 갖고 있던 관계를 고려하여 그곳에서 선교하는 예수회 신부들을 철수시키고자 추기경을 파견합니다. 그러나 과라니 부족과 사제들은 이에 불응하며 이 마을을 노예 제도로 희생시키려는 포르투갈에 대응합니다. 결국 그곳 신부들은 원주민과 운명을 같이하며 포르투갈 군대와 맞서 싸우다 마침내 순교하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이 아름다운 대사는 바로 그곳 신부들을 설득하려고 파견된 추기경이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글 마지막 부분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종교와 사랑,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누가 진정으로 산 자이고, 진정으로 죽은 자인지를 대답하게 합니다.
우리가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생명을 품고 살지 않으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처럼 보여도 생명과 진리의 길을 걷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한 지체로 살더라도 죽은 자로 살 수 있습니다. 지금 자신은 산 자입니까, 죽은 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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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06)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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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07)
(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자주 들어 왔던 말씀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건성으로 넘기던 말씀입니다. 온 세상을 얻는다는 것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목숨은 ‘목으로 쉬는 숨’입니다. 멈추면 죽습니다. 육체뿐 아니라 ‘영적 생명’도 끝납니다. 그러니 목숨에는 영적 생명도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는 것에 ‘쫓기어’ 영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현실적으로 성공을 거듭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영적 생명을 위해서도 져야 한다고 하십니다. 십자가는 억울함입니다. 억울함이 강할수록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려면, 먼저 자신을 치유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일이 잘못되면 누구나 자신을 꾸짖고 자책합니다.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다른 이에게는 다정하고 그들의 잘못에는 너그러운 사람이 자신의 실수에는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 남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버리는 것’이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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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08)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십자가는 본래 사형 도구였습니다. 로마 제국은 식민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주동자들을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고통은 길고 과정은 끔찍했기에 무척 위협적이었습니다. 반란자 대부분이 독립군이었기에 구경꾼도 많았습니다. 처형 장소도 따로 있었습니다. 사형이 확정되면 죄수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곳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말로 ‘골골타’입니다. 번역하면 ‘해골 터’이지요(마르 15,22 참조).
신약 성경이 그리스 말로 기록되면서 ‘골골타’는 ‘골고타’로 번역됩니다.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입니다. 라틴 말로는 ‘갈바리아’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곳에는 커다란 성당이 세워져 있는데 프란치스코 수도회(작은 형제회)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십자가는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한 십자가가 희생과 봉사의 상징으로 바뀐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오늘 복음 말씀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삶에 ‘아픔을 주는 고통’입니다. 자신의 성격일 수도 있고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이나 가족 관계가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없애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주십사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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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10)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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