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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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구원은 곁에 있다. - 반영억 라파엘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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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8-11-20 ㅣ No.125290

 

반신부의 복음 묵상
 

 


 

 

 

 

 

 

연중 33주간 화요일(루카19,1-10)

  

  

구원은 곁에 있다

  

  

사람은 각기 자기 위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에 맞는 처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대접은 크게 받기를 원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의 것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 대해주기를 바라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갈릴래아 호수와 사해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고 주위에는 나무도 새소리도 없습니다. 사해는 물이 흘러 나가는 강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썩어버렸습니다. 반면에 갈릴래아 호수는 요르단 강에서 물을 받아들인 만큼 사해로 흘려보내기 때문에 언제나 생명이 넘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받을 줄만 알고 줄 줄을 모르면 결국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자캐오는 세관장이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세관장이라는 위신과 체면을 포기하고 나무에 올랐습니다. 주님을 뵙고자 하는 갈망 때문입니다. 갈망이 큰 만큼 키가 작다는 장애를 극복해야만 했고, 따라서 나무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의 정성을 지나치지 않으시고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19,5) 하시며 그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세리였기 때문에 그를 죄인 취급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죄인을 찾아주시고 품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처신을 보고 못마땅해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9-10)

  

 

만약 자캐오가 부자라는 것에 대한 자만이 있었더라면, 세관장이라는 위치를 고집했더라면 그 위신과 체면 때문에 나무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는 자기를 버림으로써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후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돈에 눈멀었던 그였지만 가난한 이를 위해 재산의 반을 내놓을 마음이 생겼고, 혹시라도 횡령한 것이 있다면 네 곱절로라도 갚아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를 치룰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아무리 풍요하더라도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가 나무에 오르지 않더라도 자캐오를 부르실 수 있으시지만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19,10)고 하신대로 모든 이를 구원에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선물이지만 주님 때문에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이에게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캐오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가 나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주님과의 깊은 입맞춤으로 삶의 쇄신을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1티모1,15).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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