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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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게 하느님 법 / 연중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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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9-01-22 ㅣ No.12697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교중 미사 참여는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준이란다. 그래서 미사 참여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종종 착각을 한다. 물론 성체를 모시면 거룩히 지낸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많은 이가 주일을 의무적인 미사 참여의 날 정도로 여긴다. 만약 불참하면 고해성사를 봐야하기에. 그게 귀찮아 성당에 간다나. 미사 참여가 의무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게 전부로 믿는다면 신앙의 깊이는 그리 더하지는 않을 게다.


법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법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려면 인간을 위한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여야 할 게다. 너무 통제만 한다면 오히려 인간이 그 법의 노예가 종종 되더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7-28)’ 예수님은 율법은 하느님과 인간 사랑에 기초한다면서, 이 둘이 본질상 하나임을 가르친다.

 

따라서 안식일 법이 하느님을 위한 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그것은 마땅히 사람을 위한 법이어야만 한다. 만에 하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면 하느님도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고자 만들어졌고 그렇기에 법 역시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리라.

 

우리는 상대가 나와의 다름을 종종 참지 못한다. 나와 다른 그가 틀렸다고 하며 더 이상 소통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화가 생기고 다툼이 인다. 사랑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할 게다. 그렇지만 상대방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는 것 아닌가? 참는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일 게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고 믿었다.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을 죽이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뵐 수 없다는 거다. 아니 만날 수가 없었으리라.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을 믿고 닮는 일이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비운 그 자리에, 그분께서 들어서실 수 있게 해야 한다. 낮추어야 그분 만날 수 있다.

 

안식일의 근본은 하느님 안에서 머물고 쉬라는 것일 게다. 음식을 준비하지 말고 땔감을 모으지 말며 불 피우지 말라는 뜻은 하느님 섬기는 일에 지장이 생기기에. 사실 제자들이 배고파 밀 이삭 뜯어 먹은 것은, 외면상으로 안식일 규정을 어긴 거다. 그러나 예수님 구원 사업을 도우려고 따르는 제자들은, 안식일의 주인을 섬기는 중이었다.

 

더구나 예수님 가르침은 율법은 사람을 얽어매려는 것이 아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려고 존재한다는 거란다. 이렇게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에 그 기초를 둔다. 따라서 안식일 법이 하느님을 위한 법으로 제정되었다면, 그것은 동시에 사람을 위한 법이 되어야 한다. 모든 법은 사람을 사람답게하고자 만들어졌기에, 법인 것이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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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사람의 아들,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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