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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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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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0-02-29 ㅣ No.136407

 

 

오늘은 사순이 시작된 지 나흘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을 크게 나누어보면 제일 먼저 우리가 바라보는 절대자이신 예수님, 예수님의 제자, 세리 공무원인 레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입니다. 레위가 예수님께 잔치를 베푸는 장면이 나옵니다.

 

레위는 예수님 당시에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예전에 보면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중에서 부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무원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세무 공무원일 거라고 봅니다.

 

예전에 뉴스보도를 보면 세무비리로 뇌물죄를 저지르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레위도 그당시 우리나라 세무공무원들이 예전에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사회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시대에서 살았던 신분입니다.

 

정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속되게 표현하면 힘없는 자를 등쳐먹은 것이 됩니다. 세상적인 정의라는 법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분명 죄인입니다.

 

한편 하느님의 법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그당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사람이 베푸는 잔치에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영역을 배제하고서라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세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게 정도의 삶인지 그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부도덕한 사람이 베푸는 잔치에 함께 잔치를 즐기시니 이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견지해야 할까요?

 

근데 이런 사실 이전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자 바로 레위에게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을 하시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라고 복음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따랐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가 어디 시장 가자고 하면 시장을 가는 것처럼 그냥 단순히 어떤 목적지에 동행하는 그런 의미에서 따르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그런 의미라면 복음에 언급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여기서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따른다는 것으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텍스트로만 이해를 했을 때 레위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인 사회적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자신과 같은 하찮은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고 대접해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잔칫상을 둘러 앉아 향연을 즐기는데 이 모습을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목격을 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하고 말입니다.

 

실제 이 상황에서 문맥의 의미로만 봤을 때 질문을 하는 대상은 제자들에게 했습니다. 근데 이에 대한 대답은 제자들이 하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앉아 계셨던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2인칭입니다. 근데 문맥으로 보면 복수의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속에는 함께 있었던 예수님께서도 이 질문에 해당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입니다. 근데 딱 보니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제자들이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할지를 조금은 지켜보셨을 겁니다.

 

제가 상상을 했을 땐 제자들이 이런 질문에 잘 대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위기상 그렇지 않았을까요? 모르죠. 제자들 중에도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면서 대답을 해 주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복음은 마무리가 됩니다.

 

갑자기 의사병든 이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말씀 속에 보면 조금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텍스트에서는 죄인들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정상입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인 레위와 함께 어울려 먹고 마시는가?” 이렇게 질문을 해야 이치에 합당합니다.

 

근데 질문 속에 죄인들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바리사리와 율번학자들이 왜 죄인들이라는 말을  표현했을까 고민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라는 말을 한번 보시면은요 세리들이라고 해서 레위 한 명만 있은 게 아니고 다른 세리도 여럿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외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군지 복음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바리사이들의 질문 속에 나오는 세리는 잔치가 베풀어지는 곳에 있는 세리들 전체를 말하는 하나의 신분을 상징하는 말과 같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분명 사람들이라고만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죄인들이라고 언급된다는 말에 저는 포커스를 두려고 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왜 이 사람들은 죄인들이라고 표현을 했을까요?

 

지금부터 잘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아주 흥미로우면서 좀 복잡한 사실관계가 이 속에는 숨어 있는 듯합니다. 집중해서 보겠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답이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 속에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을 하시는 대상은 두 곳을 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제외한 그곳 식탁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는 의미도 담고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의 숨은 의도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제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을 거라고 상상을 해봅니다. 너네들이 무슨 근거로 여기에 있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라고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함부로 단정해서 말하느냐? 하는 의미도 숨어 있다고 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너희가 아무리 율법을 준수하고 계명을 잘 지킨다고 어시대긴하지만 내가 볼 때는 도토리 키재기다이런 느낌으로 말씀을 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죄인인데 그네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계명도 더 잘 알고 또 잘 지킨다고 스스로 생각해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보니 그게 더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죄를 지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니 그런 상태에 있는 너희도 바로 그럴 자격이 있느냐 하는 그런 의도도 다분히 있다고 여겨집니다.  

 

아마 이들이 들을 귀가 있으면 이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을 건데 들을 귀가 없었나 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의사에 비유를 하십니다. 의사는 병든 이를 고쳐주는 게 고유의 일입니다. 여기서 병든 이는 육체가 병든 이도 있을 수 있지만 영혼이 병든 이도 있습니다.

 

문맥상 보면 병든 이를 죄인과 동급으로 인정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병도 병이지만 영혼이 병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신는 듯합니다. 그 근거는 바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럴 거라고 봅니다.

 

만약 이게 육체의 병과 영혼의 병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라면 육체에 질병이 생기는 것도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소지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병든 이는 죄인인데 그 죄인영혼이 병든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의사가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 주목적이듯이 그렇게 하려면 그 과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회개라는 걸 알려주시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음에서 하나 중요한 걸 발견한다면 바리사이들처럼 자신도 죄인이면서 죄인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경종일 수 있습니다. 그럼 회개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오늘 독서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1독서 이사야서 589절과 10절을 간략하게 표현을 하면 자선을 베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이 나옵니다.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어둠과 암흑은 죄를 상징할 거라고 봅니다. 암흑이 대낮처럼 된다면 대낮에는 빛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빛은 바로 하느님을 상징하니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거룩한 존재로 될 거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시고 계십니다.

 

13절 이하를 보게 되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면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하느님께서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는 축복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끝으로 네가 길을 떠난다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어둠이라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향해 찾아 떠나는 회개의 길로 가려고 할 때 죄라는 환경을 벗어나려고 하는 그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화답송에서 주님, 제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주시면 당신이 말씀하시는 진리 안에서 그 길을 걷겠다고 합니다. 바로 그 길이 오늘 복음에서 레위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두말없이 바로 따라나서는 것과 마치 흡사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복음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둔 채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가령 세상일, 세상이 주는 달콤한 유혹, 이런 것 모든 것을 벗어버릴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독서와 복음 묵상을 하면서 나는 과연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무엇에 매여 그 길을 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레위처럼 떨쳐버리고 예수님의 길을 갈 수 있을지를 한번 진지하게 묵상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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