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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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너는 나를 따라라,"-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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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8-05-19 ㅣ No.120559

 

 

요한 21,20-25(부활 7주 토)

 

 <부활시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내일 <성령강림절>을 앞두고, 부활시기를 마무리 하면서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의 마지막 말씀을 들었습니다. 곧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의 끝부분과 그에 대한 편집자의 해설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 세 번째 이야기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절망에 빠진 제자들 일곱이 티베리아 호수로 고기 잡으러 나갔으나 밤 내 아무것도 잡지 못한 아침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요한 21,6) 하시고, 그들에게 아침상을 차려 먹여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에 걸쳐 물으시고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하시며 사목권을 주며, 그가 마지막 날에 두 팔을 벌려 죽게 될 것을 예고하면서, 그에게 나를 따라라(요한 21,19)하시고 걸으십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가 뒤따라오는 것을 보고 그가 어떻게 될 지를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

 

 이는 그에게는 베드로와는 다른 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각자에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베드로에게는 증거의 몫이, 그리고 그들을 뒤따라오는 사랑하는 제자에게는 증언의 몫이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는 선포(kerygma)와 증거(mariteria)라는 예수님의 예언직의 두 가지 형태입니다. 곧 말씀의 선포와 행위의 모범을 통한 증거를 나타냅니다. 이 둘은 서로 경쟁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따라 하늘나라의 복음을 세상에 알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너는 나를 따라라하시면서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추종을 더욱 명료하게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 추종은 예수님의 운명에까지 동참하는 죽음의 추종까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추종에 있어서 특별히 순명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목자로서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겠지만. 그것은 양들을 위한 죽음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봉사로서의 죽음이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베드로 사목권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양들을 위해 자유롭게 지신의 목숨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이며, 제자들은 오직 순명으로써 그분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오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라라하시면서 순명의 삶과 그 순명의 본질을 깨우쳐주십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그리스도의 순교의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요한과 같이 말씀을 선포하며 살아가지만, 이러한 선포와 증거의 삶이 그리스도의 뜻에 따르는 순명에 그 원천과 근원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그리스도의 가슴에 기대어 해야 할 일입니다. 마치 춤과 춤꾼이 하나이듯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일인 사도직이 통합되고, 사도직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선포되고 증거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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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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