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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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일: 가해: 율법과 예수님의 사랑의 법 / 조욱현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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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모 [kanghmo7] 쪽지 캡슐

2017-02-19 ㅣ No.110197

 

연중 제7주일: 가해: 율법과 예수님의 사랑의 법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모든 율법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드높은 정의 즉 사랑의 법에로 모아지고 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마태 5,45)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의 모범을 따라 편협한 마음이나 감정에 사로잡힘이 없이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이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신약성경의 핵심 부분을 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은총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우리가 실현시킬 수 있는 어려운 복음이기도 하다. 이 계명은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그 가르침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독서: 레위 19,1-2.17-18: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1독서에서는 , 주 너의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2)는 일반적인 권고의 말씀이 이웃사랑의 내용에 앞서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복음의 결론 부분에서 의미 깊게 재조명하고 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 말씀은 성성에 있어서는 비교의 기준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성성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성성은 인간을 내면으로부터 변화시켜 나가고자 하는 내적인 윤리적 요소이다. 복수심에 찬 앙심을 버리고 충고를 한다는 것이(17-18) 이미 성성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18)는 말씀에서 이 이웃은 신앙의 혹은 종족의 의미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무한히 확대시키실(마태 22,37-40 참조) 최고 영성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성성의 모델이시며 사랑의 모델이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모두 사랑하시고 또 용서해주시는 분이시니, 그 자녀들 역시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 마태 5,38-4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38-42)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입은 손해나 상해에 대한 보상은 실제로 해를 입은 정도를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동태복수법(탈출 21,24-25; 레위 24,17-20; 신명 19,21 참조)을 폐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법을 역설적으로 뒤엎으시며 비폭력적인 법을 끌어들이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39) 뿐만 아니라 폭력을 제압하는 것은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 그가 요구하는 것 이상을 양보하는 것이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 주어라.”(39-40)

 

이 말은 너무 지나친 말이 아닐까?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자기 목숨을 다해서라도 기꺼이 들어주려고 하는 사랑을 의미한다. 거기서는 폭력의 의미가 상실되고 만다. 즉 사랑으로 정의의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가 보다 더 사랑한다면 인간적인 정의의 법정이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43-48) 여기서 원수라는 개념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 또한 신앙상의 이유로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44)이다. 신앙인들은 그들에 대해 자비와 이해심을 가져야 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미워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44-45)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랑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제시하신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45) 아버지께서는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하신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는다면 그분의 자녀이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산다면 우리는 그분을 닮아 그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사랑은 원수에 대한 사랑에서 최고로 표현된다. 이 사랑을 통해 신앙인다운 특징이 드러난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을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46) 그리스도인들은 이 원수에 대한 사랑으로 고유한 특징을 드러내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분될 것이다. 인간의 본성으로는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요한 바쉘레라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바치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저의 부친을 해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복수가 아니라 용서하게 하시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게 하심으로써 흠없는 정의를 이루게 하소서.”

 

2독서: 1코린 3,16-23: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코린토 교회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며 싸움에 휩싸여있었다. 그리하여 코린토 공동체는 그리스도께 의존하지 않고 바오로나 베드로 같은 인간들에게 더 의존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함으로써 분열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할 때 하느님의 성전은 서있지 못하고 만다. 반대로, 모든 것은 사랑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그리스도께 맡길 때 구원될 수 있다. 또한 모든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오늘의 많은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원수들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원수들을 새롭고도 근본적인 자세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 사랑을 교회 공동체 생활의 본질적 차원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이때에 코린토 교회의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어려움들이 극복될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21.23)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하느님의 계명 율법이 더 적극적인 삶으로 은총의 복음이 되도록 주님의 가르침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구원의 복음이 되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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