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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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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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8-05-19 ㅣ No.12055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독특한 표현은 요한 사도를 지칭한다. 어쩜 그는 예수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일 수도.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그분 속마음을 여쭈어도 보았다. 사실 예수님 제자치고 그분 사랑하지 않으신 제자가 어디 있었을까? 그렇게 그는 사랑받은 제자로 등장한다. 또 사도 중 그만이 순교하지 않고 수를 다했다고 알려진다. 물론 성모님을 모셨고 제자들과 함께 스승님 가르침을 정리한 복음서를 집필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시게 된다는 내용인 묵시록도 남겼다.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서,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던 이다. 요한을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1,20-22 참조)’

 

베드로 사도가 요한 제자의 앞날에 대하여 예수님께 여쭙자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이르셨다. 이 내용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지? 그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지 않는다는 말일까? 예수님은 요한의 운명은 베드로가 상관할 바가 아니란다. 각자의 운명은 오로지 예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일 게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사랑의 사도로 살아가며 나머지 몫은 예수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믿음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사도 요한, 그만을 사랑하신 게 아닐 게다. 모든 제자를 다 사랑하셨으리라. 그런데도 요한은 짐짓 이 표현을 삽입하면서, 자신이 예수님과 가까웠다는 것을 알린다.


암튼 요한은 예수님 재림을 기다리면서 말씀을 집필했다. 그만큼 스승의 말씀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일을 하였다. 이렇게 그는 그 일을 순교에 버금가는 일로 받아들였을 게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는 순교를, 요한에게는 증언자의 사명을 주셨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 주어진 소명과 능력은 서로 다르리라. 각 개인에게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고유한 길이 있기에 서로 다르고 차이가 있을 수도. 그러므로 다른 이와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할 게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고, 사도들은 그분 증인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차례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다양한 직분과 임무를 맡기셨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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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열두 제자,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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