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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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을 받은이가 지녀야 할 품성/구자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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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2-22 ㅣ No.118488

 

"부르심을 받은이가 지녀야 할 품성"

찬미예수님!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연중 13주일이고

교황주일로 지냅니다.

보편성의 의미를 지닌

우리 가톨릭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인

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정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성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이 세계의 모든 신앙인을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교황님의 사목 수행을 위해서

특별 헌금도 봉헌합니다.

우리가 바치는 자주 바치는

기도인 사도신경의 끝부분에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라고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세우신

이 교회 그리고 사도들의

전승으로 이어오는 신앙공동체인

교회 자체가 바로 기적입니다.

또 이 교회는 인류 역사에서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표징이고

또 교황직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이며

신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소개되는

세 가지 부르심은

끝가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데 있어서 결코

광신적인 행위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것들을

기꺼이 끊을 수 있는

결단을 강조하십니다.

이러한 결단은 믿음의

결실로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로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믿음의 기초를 물질적

또는 심리적 안전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생사에 있어서 죽음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해서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끝으로 부르심에 응답하려면

지나온 자신의 삶에 길에

새겨진 자국만을 보지 말고

우리의 수고를 기다리는 곳을

향해서 앞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들을 뒤로 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의심 없이

매일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지금 살고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산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마음껏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앞을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께서는

최종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인도하시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이 여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안타깝게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주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빠져 나갈 어떤 구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지금 현재도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들 역시 예수님의

부르심에 몸을 숨기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은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이라는 고통의 길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맞게 될

어떤 위험한 결과도

감수할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인간 조건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통과

역경 앞에서도 어떤 구실과

변명을 찾지 않고 언제나

놀라운 쇄신의 힘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1독서를 보면

엘리야가 홀로 하느님을

만나 사명을 받게 됩니다.

그 사명의 하나는

한 분 뿐이신 하느님께

충실한 백성을 양성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미 시작한 예언자의 일을

계속할 후계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후계자로

엘리사를 지목하셨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넘겨주는데

이 망토는 그의 인격과

권리와 사명 그리고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제자들의 예형이고 지금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부질없는 세상의 명예와 물질과

자리다툼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는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악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노예 상태에 있는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값을

치르듯이 당신의 피로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다른 무엇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이끌어

바른 기준을 선택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라져 버리고 말 지상의

것들에 만족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삶을

성령께 맡기고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며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또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으로

방종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이웃과 관계를 개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사랑의 삶을 선택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생명을 바쳐서

피로써 값을 치루고 얻어주신

자유인이 지녀야 할

품위이고 인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부활로

이어지는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결코

 대충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목숨까지 바치셔서

우리를 죄악의 굴레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얻어진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지금 나 자신은 어떤

모습으로 응답을 드리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잠시 묵상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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