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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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선물 -하느님의 나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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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02-27 ㅣ No.110379

 

 

 

2017.2.27. 연중 제8주간 월요일, 집회17,24-29마르10,17-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구원의 선물

-하느님의 나라-

 

 

오늘 제1독서 집회서의 주제는 ‘회개의 초대’이고,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입니다. 

회개와 하느님의 나라가 은연중 직결됨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읽어도 우리에겐 생생한 도전이 됩니다. 

 

어느 부자가 예수님께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묻습니다. 

그의 자세를 통해 구원을 목말라하는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게 됩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스승을 찾았던 옛 사막 수도자들의 공통적 물음이기도 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구원을 갈망하는 구도자들의 보편적 질문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평생 화두이자 영원한 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접근이 치밀합니다. 

우선 계명들의 준수 상황을 파악하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생략된 이웃과 관계된 계명들입니다.

 

‘살인해서는 안된다. 

간음해서는 안된다. 

도둑질 해서는 안된다. 

거짓증언을 해서는 안된다. 

횡령해서는 안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는데 여전히 영원한 생명에 목말라 하는 부자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부자가 지킨 계명은 한가지만 제외하고 모두 부정적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계명을 지킨 것입니다. 

틀에 박힌 좋은 신자였을지는 모르지만 긍정적이고 적극적 나눔의 실천은 없었습니다. 

 

생각을, 마음을 바꾸는 것은 회개의 실천입니다.

회개의 실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의 나라에 진입합니다. 

예수님은 근본적 회개의 실천을 명령하십니다. 

 

부자에게 주어지는 적절하고도 정확한 처방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소극적 계명의 실천에서 ‘나를 따라라.’ 명령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부자는 '눈'이 없었고 '방향'이 없었습니다. 

흡사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 삶의 모습 같습니다. 

 

모든 것을 처분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회개에의 초대입니다. 

바야흐로 눈과 방향이 주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유욕이 주님 향한 그의 눈과 방향을 가렸습니다. 

본질적은 것은 놓치고 부수적인 것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과연 주님의 이 도전적 명령에 응답할자 몇이나 될런지요. 

 

소유욕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입니다. 

아마 이 부자는 주님의 요구에 응답하진 못했지만 

이 충격적 체험은 그에겐 끊임없는 회개의 실천에 도전이 됐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복음의 둘째 단락이 부자의 구원문제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놀랐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반응에 아랑곳 없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십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이대로라면 부자의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니 제자들은 더욱 놀랄 수 뿐이 없고,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하며 서로 묻습니다.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화두처럼 주어지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구원은 가난해서, 또 무엇을 해서 쟁취하거나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라는 회개에 겸손히 응답할 때 주어지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는 언젠가의 미래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늘 지금 여기’ 회개하여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집회서 역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그분께서 너를 이끄시어 어둠에서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살아서 감사하는 이들을 대신하여 누가 저승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찬미를 드리겠느냐? 

죽은 이에게는 찬양이 그치지만, 건강하게 살아 있는 이는 주님께 찬미를 드리리라. 

주님의 자비는 얼마나 크시며, 당신께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그분의 용서는 얼마나 크신지!”

 

살았을 때 회개요 찬미와 감사이지 죽으면 회개도 감사도 찬미도 없습니다. 

회개를 통한 구원의 기쁨의 고백이 바로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화답송 후렴 말씀처럼, 이미 구원되어 하느님의 나라의 기쁨을 노래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선사하시어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시편32,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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