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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 투성이 몸으로~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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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7-03-16 ㅣ No.110774

루카 16,19-31(사순 2주 목)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극단적인 두 인물의 대조된 모습을 통해, 불신과 재물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로 초대합니다.

 

 

 

이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루카 16,20)

 

 

 

여기에서,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즐기는 어떤 부자는 이름이 제시하지 않으나, 거지는 ‘라자로’라는 곧‘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하느님이 그를 인정하고 도우신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부자는 가련한 라자로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자신과 라자로 사이에 골짜기를 파놓고 분리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이승에서 파놓고 건너가지 않은 그 분리의 골짜기는 저승에서도 그가 건너갈 수 없는 분리의 골짜기가 되고 맙니다.

 

사실, 이 부자는 특별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고,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인색했습니다. 곧 자기 자신에 빠져 타인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대문 앞에 누워있는 가난한 라자로를 무시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첫째 의미>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할 바를 다한 것이 아니라, 선행과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곧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곧 죄라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는 부유함(부자)=멸망, 가난함(빈자)=구원이라는 등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심판받은 것은 그가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이웃사랑을 하지 않은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어야 하고, 마시되 자신의 혀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자비를 입어 부자가 되었으니,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죽어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 곧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6,24)라는 간청은 ‘제가 자비를 베풀게 해주십시오.’ 라는 간청으로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부자가 대문 앞에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로 누워있어도 못 본 것은 자신의 호사스러움과 즐거움에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탐욕과 인색에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제들 사이에, 또 가난한 이들과의 사이에, 냉대와 무시와 무관심의 골짜기를 파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곧 저승에서의 골짜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승에서 처지가 뒤바뀐 부자는 자기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루카 16,29)

 

 

 

부자는 이승에 살고 있는 자신의 형제들의 회개를 위해서 라자로를 보내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은 이승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덧붙여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

 

 

 

사실, 기적이 사람들을 회개시키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믿지 못함은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혹은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듣고 보고도 받아들이지를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곧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비를 체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완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에서 옵니다. 이것이 오늘 이 비유의 <두 번째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되다.”(루카 11,28)

 

 

 

이 비유가 전하는 <세 번째 의미>는 어떤 부자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으나, 거지의 이름을 ‘라자로’라고 밝히고 있음에서 암시되고 있습니다. 곧‘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이’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라자로가 구원을 입은 것은 그가 남에게 특별한 선을 베풀었거나 해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혹은 그의 가난하고 고통 받은 삶에 대한 보상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입었음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의 호의와 사랑을 입고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그렇습니다. 라자로가 은총을 입은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일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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