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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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목/ 어떻게 예수님을 추종해야 할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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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1-18 ㅣ No.109484




연중 2주 목, 마르 3,7-12(17.1.19)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셨다.”(마르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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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예수님을 추종해야 할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시자(3,7ㄱ) 갈릴래아와 유다인들이 사는 모든 지방에서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듭니다(3,7-8).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만 모여들었던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온 이스라엘이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그분을 따라온 것입니다(3,10).

여기서 예수님 곁에 있는 세 부류의 사람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았기에’ 그분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 신원'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깊이 체험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 신분을 온전히 인식한 것은 수난 당하시고 부활하신 뒤였습니다.

군중들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질병과 가난과 고통을 겪는 비참한 상황에 있었던 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 능력을 보고 자석에 끌리듯 그분을 찾아온 것이었지요(3,10).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그들을 끌어내시어 자신을 다시 보도록 하십니다(3,9).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지릅니다(3,11).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은 그분을 거부하는 몸짓이지요. 그들의 고백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긴 하지만 믿음에 이르지 못한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함구령을 내립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미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계시되고(1,11), 하느님의 아드님(3,11)으로 고백되며,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셨지만 그 뜻은 수난을 겪으시고 목숨바쳐 죽는 그때에야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참모습은 구마나 치유처럼 사람들 눈에 영광스럽게 보이는 행위에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목숨을 바치며 하느님의 뜻과 일을 이루는 데서 드러나는 까닭이지요.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제자들처럼 그저 부르심에 따르거나, 군중들처럼 하느님과 무관하게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알아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더구나 '더러운 영'처럼 정확하고 심오한 인식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적 인식만으로는 믿음에 이를 수 없고, 그분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지니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그분의 수난의 여정에 동참하고, 그 수난의 사랑으로 목숨 바쳐 이웃을 사랑할 때에만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을 온 존재로 받아들이고 살아낼 때만이, 그리고 살아내는 만큼만 그분을 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삶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한 함구하고, 아는 체 하지 않는 정직함이 우리다운 겸손한 모습이 아닐까요? 세상의 힘이 아니라 철저히 다른 이들을 섬김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우리이길 소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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