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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잊혀진 여성 홍순희(루시아) 생애 소개[브레이크뉴스-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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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pgu77] 쪽지 캡슐

2017-09-18 ㅣ No.213393

조선후기 잊혀진 여성 홍순희(루시아) 생애 소개


박관우 역사작가 | 기사입력 2017/09/18 [09:29]
 

 

▲ 박관우 역사작가 ⓒ브레이크뉴스

 


한국(韓國) 천주교(天主敎) 5대 박해중의 하나인 신유박해(辛酉迫害)는 1년여에 걸쳐서 남인 신서파(信西派) 학자들을 포함하여 3백명이 순교하고 더불어 수백명이 유배간 대규모 박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유배간 여성이 있었으니 바로 본 칼럼에 소개하는 洪順禧(루시아)이다.


사실 홍순희라는 이름만 언급하면 생소하게 느낄 수 있으나 그녀는 한국천주교회(韓國天主敎會) 최초의 여성회장(女性會長)이었던 姜完淑(골롬바)의 딸이었다


이제 홍순희가 어떻게 유배까지 가기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한다.


홍순희는 풍산홍씨(豊山洪氏) 문중(門中)의 후손(後孫)으로서 충남 덕산에서 홍지영(洪芝榮)과 강완숙(姜完淑) 사이에 출생하였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특별히 알려진 바 없으며, 강완숙이 덕산에서 서울로 상경할 때 할머니,이복오빠 洪弼周(필립보)와 함께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강완숙이 서울에 상경할 때 처음에 정착한 곳은 倉洞(현:南倉洞)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시 이주하여 체포될 당시의 거주지는 계동(桂洞)이었다.


홍순희의 행적과 관련하여 확실히 알려진 대목은 신유박해 때인 1801년(순조 1) 2월 24일 계동의 집에서 강완숙,홍필주와 함께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이후 강완숙과 홍필주는 서소문밖 형장에서 순교의 길을 걷게 되는 반면에 홍순희는 전남 영광으로 유배를 갔다는 것인데 안타까운 점은 그 이후의 행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홍순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강완숙의 딸이라는 혈통적인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요인은 홍순희가 강완숙,홍필주와 함께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강완숙이 주문모 신부를 은신시킨 사실을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모든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강완숙과 홍필주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고 하니 그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1795년(정조 19) 강완숙의 집에는 여러명의 동정녀(童貞女)들이 모여 오늘날의 수녀원 같이 동정녀 신앙공동체(信仰共同體)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인데 그 구성원중의 한명이 바로 홍순희였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잊혀진 여성 강완숙의 딸 홍순희를 애절한 심정으로 추모하며, 그 생애가 우리사회에 널리 알려지길 충심으로 기원한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 역사작가.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저자. 칼럼니스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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