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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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3 -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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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9-23 ㅣ No.114914




2017
09 23 () 가해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Memorial of Saint Pius of Pietrelcina, Priest
Saturday of the Twenty-fourth Week in Ordinary Time

티모테오 1 6,13-16 / 코린토 115,35-37.42-49
루카복음 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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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1 6,13-16

사랑하는 그대여,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대에게 지시합니다.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 없고 나무랄 데 없이 계명을 지키십시오.
15
제때에 그 일을 이루실 분은, 복되시며 한 분뿐이신 통치자, 임금들의 임금이시며 주님들의 주님이신 분, 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Reading 1


1 Tm 6:13-16

Beloved:
I charge you before God, who gives life to all things, and before Christ Jesus, who gave testimony under Pontius Pilate for the noble confession, to keep the commandment without stain or reproach until the appearance of our Lord Jesus Christ that the blessed and only ruler will make manifest at the proper time,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who alone has immortality, who dwells in unapproachable light, and whom no human being has seen or can see.
To him be honor and eternal pow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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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15,35-37.42-49

형제 여러분, 35 “죽은 이들이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그들이 어떤 몸으로 되돌아오는가?” 하고 묻는 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36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37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체가 아니라 밀이든 다른 종류든 씨앗일 따름입니다.
42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3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44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45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Reading 1


1 COR 15:35-37, 42-49

Brothers and sisters:
Someone may say,
How are the dead raised? With what kind of body will they come back?

You fool!
What you sow is not brought to life unless it dies.
And what you sow is not the body that is to be but a bare kernel of wheat, perhaps, or of some other kind.

So also i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It is sown corruptible; it is raised incorruptible.
It is sown dishonorable; it is raised glorious.
It is sown weak; it is raised powerful.
It is sown a natural body; it is raised a spiritual body.
If there is a natural body, there is also a spiritual one.

So, to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But the spiritual was not first; rather the natural and then the spiritual.
The first man was from the earth, earthly; the second man, from heaven.
As was the earthly one, so also are the earthly, and as is the heavenly one, so also are the heavenly.
Just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ly one,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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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8,4-15

그때에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Gospel


Lk 8:4-15

When a large crowd gathered, with people from one town after another journeying to Jesus, he spoke in a parable.
"A sower went out to sow his seed.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on the path and was trampled, and the birds of the sky ate it up. Some seed fell on rocky ground, and when it grew, it withered for lack of moisture. Some seed fell among thorns, and the thorns grew with it and choked it. And some seed fell on good soil, and when it grew, it produced fruit a hundredfold."
After saying this, he called out, "Whoever has ears to hear ought to hear."

Then his disciples asked him what the meaning of this parable might be.
He answered, "Knowledge of the mysteries of the Kingdom of God has been granted to you;
but to the rest, they are made known through parables so that they may look but not see, and hear but not understand.

"This is the meaning of the parable. The seed is the word of God. Those on the path are the ones who have heard, but the Devil comes and takes away the word from their hearts that they may not believe and be saved. Those on rocky ground are the ones who, when they hear, receive the word with joy, but they have no root; they believe only for a time and fall away in time of temptation. As for the seed that fell among thorns, they are the ones who have heard, but as they go along, they are choked by the anxieties and riches and pleasures of life, and they fail to produce mature fruit. But as for the seed that fell on rich soil, they are the ones who, when they have heard the word, embrace it with a generous and good heart, and bear fruit through persev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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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9 23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복음서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 비유의 뜻이 명료해서 사람들은 씨앗이 떨어진 네 곳, 곧 ‘길, 바위, 가시덤불, 좋은 땅’ 가운데 나는 어떤 처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흔히 묻곤 합니다. 이 복음을 읽는 신자 대부분은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보다는 뿌리가 내리지 못하는 ‘바위’나 인생 걱정과 재물과 쾌락의 덫에 걸린 ‘가시덤불’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비유는 제자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와 훈계 말씀이지만, 복음을 듣는 지금의 내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나 죄스러움에 빠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쉐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는 말씀을 상기시키며, 하느님과 신뢰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일깨워 주고자 하신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율법 규정의 배타적 잣대로 이방인들과 소외된 계층들을 함부로 단죄했던 유다인들의 실상을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시며,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는 말씀으로 그들이 처음 하느님께 부름 받았던 이집트 탈출의 해방과 광야에서의 수련,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 맺은 계약을 상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아는 것과 정말로 성경의 말씀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듣고 실천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을 읽고 필사하고 외운다고 말씀이 저절로 내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닙니다. 내 영혼 안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내 영혼의 밭이 선한 의지와 기쁨, 자비와 인내, 겸손과 희생의 거름들로 잘 가꾸어져 있어야 합니다. 나는 좋은 땅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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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9 17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시며좋은 땅이 되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 말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 뿌려질 때, 우리 마음이 말씀의 씨앗이 싹트지 못하는 굳은 땅이 되거나 싹이 돋아나도 곧 짓밟혀 버리는 길거리 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위나 가시덤불과 같이 싹이 자랄 수 없고 장애물이 많은 땅이 되어서도 안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뿌리신 씨앗은 좋은 것이어서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선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그러우신 분이어서 우리의 마음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열매 맺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잘 열매 맺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말씀의 밭이지만, 그 밭에는 미움과 세상 걱정, 타인의 공격으로 말미암은 상처들이 자라게 됩니다. 세상의 쾌락과 욕심으로 우리는 열매 맺지 못하는 밭으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땅에서 왔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입니다. 모든 곡식이 땅에서 자라 듯 우리 안에 심어진 주님의 말씀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서 만들어진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천상의 밭으로 자랍니다. 말씀을 마음 안에 품고 인내로 여러 난관을 극복하는 사람은 좋은 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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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9 19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보도블록 사이사이, 돌 틈새에서 자라 나오는 풀들을 보면 그 생명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얼마 되지 않는 흙과 물과 햇빛만으로도 풀들은 자랍니다. 그 풀들이 보도 위에 씨앗을 떨어뜨릴 때, 과연 그 가운데 몇 개나 싹이 틀 수 있을까요? 가을에 떨어진 코스모스 씨앗 가운데 몇 퍼센트가 싹이 터서 다음 해에 다시 꽃을 피울까요?
나무와 꽃들이 수많은 씨앗을 만들어 세상으로 흩뿌려도, 그 가운데 적은 수만이 싹이 트고 자라나고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을 만듭니다. 나무는 훨씬 더 많은 씨앗을 잃어버리면서도 계속 씨앗을 뿌립니다. 자라나서 열매를 맺을 그 얼마 안 되는 씨앗들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숲에는 나무가 계속 자라나고 들판에는 풀들이 해마다 자라납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도 그 나무와 같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말씀의 씨앗 가운데서도 좋은 땅을 만나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고 귀띔해 줍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구석에 떨어진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나 큰 나무가 되기도 할 것이고 어디인가에서는 소리 없이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씨앗도 있을 것입니다. 들판에 나무와 풀이 자라듯, 말씀의 씨앗들도 그렇게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본시오 빌라도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 믿음의 훌륭한 싸움을 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어떤 직책을 수여할 때 하던 훈계 내용인데, 세례를 받을 때와 박해를 받을 때에 명심해야 할 말씀이기도 하지요. 이 권고대로 살 때, 우리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처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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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9 20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오늘 복음의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뿌린 씨가 좋은 땅이 아니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몸소 비유에 대한 풀이까지도 해 주십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든 지금의 우리이든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 나는 이 당연한 것 같은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며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봅니다.
이 비유의 중심은씨 뿌리는 사람이 아니라씨앗과 그씨앗이 뿌려진 땅’, 그리고열매입니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세 가지 유형의 삶(, 바위, 가시덤불)과 복음을 받아들인 삶의 모습(좋은 땅)이 대조됩니다. 그 기준은 결실인 열매를 맺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땅은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제 이 비유가 말씀을 듣는 이의책임에 관하여 말하고 있음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니 이 비유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이 비유를 알아들었다는 것은 더 이상 표면적 의미의 이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에 필요한 결단과 실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아직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실천적 인식이 어려운 까닭은존재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1독서의 바오로 사도는 부활의 참뜻을 알려면 뿌린 씨가 죽지 않고는 살아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알아듣는 것은 옛 생활의죽음이라는, 존재의 변화가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은 어렵고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 꾸준히 머무는 이는 행복한 결실을 거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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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9 21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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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9 22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농사의 기본은 비옥한 땅을 만드는 것이며, 땅 만들기의 시작은 퇴비 만들기에 있습니다. 자연 농법이나 환경친화적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퇴비를 만들지 않는 것은 거짓입니다. 퇴비를 만들려면 풀이나 낙엽, 깻묵, 쌀겨, 태운 왕겨, 닭똥 등을 적당히 섞고 발효액을 희석해 뿌려 가면서 충분히 젖도록 잘 섞어 주어야 합니다. 그 뒤에 통풍이 되는 포대로 덮은 다음 보름 정도에 한 번씩 뒤집는데,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합니다. 퇴비를 쌓을 때는 너무 높지 않게 쌓아야 공기가 잘 통합니다. 이렇게 야적된 퇴비는 곧 땅의 생명이 되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처럼 퇴비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쉽고 간편한 화학 비료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쉬운 방법이라고 하여 화학 비료로 오랫동안 농사를 짓다 보면 땅이 죽고 소출도 적습니다. 퇴비는 비록 만드는 데 힘들지만 그것을 쓰면 땅이 살아나고 곡식을 병충해에 강하게 만들어 수확 또한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수확을 많이 하려면 땅이 기름져야 합니다. 쉽고 편한 방법으로는 좋은 땅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좋은 땅을 만들려면 퇴비를 만들 때 힘든 것처럼 어려운 과정이 따릅니다. 그 과정이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으로 우리 마음의 밭은 차츰 비옥하게 변할 것입니다. 그 기름진 마음의 밭에는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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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917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기념일)


창세기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어 만드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곧 히브리 말로아담’()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사람은 하나의 땅일 따름이지만, 하느님의 숨결이 닿아서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땅입니다. 세상의 땅에는 우리 인간이 씨를 뿌리고 거기서 곡식을 추수하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을 빚어 만드신아담곧 사람이 된은 하느님께서 일구어 씨앗을 뿌리시고 추수하시는 하느님의 밭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통해 주님께 드릴 땅의 소출을 생산합니다. 형체를 가진 몸은 마음을 담아내고 형체가 없는 마음은 몸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형체가 없는 주님 말씀은 마음을 통해 우리 몸에 스며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몸을 통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갈라 5,22 참조). 이것이 주님께서 당신의 땅을 통해 추수하시는 곡식입니다.
몸 속에 마음이 있고 마음속에 몸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몸 또한 건강을 잃기 쉽고, 몸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못하면 마음마저도 병이 들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좋은 땅을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라고 하셨지요.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이 우리 삶으로 열매 맺으려면 우리 몸과 마음을 소중히 보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주님께서 창조하실 때보시니 참 좋았다.”는 본래의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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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9 17)
(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주교 학자 기념일)


주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 곧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뽑아 세우신 열두 제자와 함께 당신의 사명을 계속 수행하십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여인들도 주님 일행에 동참하여 전 재산으로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당시 여성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는 위치가 떨어지는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소외되고 죄인 취급 받던 여성이 주님 일행에게 시중을 듭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재산을 다 팔아서 말입니다. 이 여인들이 결국엔 주님께서 만드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됩니다. 주님께서 일구어 나가시는 공동체의 중요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오히려 남성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우리나라 박해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최초 여성 회장이었던 순교자 강완숙 골룸바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성의 역할의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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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9 18)


복음에서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마리아 막달레나’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 보셨고, 부활하신 그분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분이십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예수님을 추종하며 사셨을까요
한때 포기했던 삶이었는데, 그분께서 들어와 ‘빛과 향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때 좌절했던 인생이었는데, 그분을 만나 ‘삶의 기쁨’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간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평생의 은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는 것을 ‘삶의 이유’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지켜 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헌신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그런 사랑을 예수님께 쏟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점점 승화시켜 주셨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사도’로 변신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함을 용서하소서.
그 영혼만을 사랑하려 하나 가끔은 그를 안고 싶어 함을 용서하소서.
부질없이 깊숙이 묻어 버린 기억을 밤새워 도로 캐어 냄을 또한 용서하소서.
허다한 날 혼자 앓는 지병이 힘겨워 가끔은 그를 잊은 척함을 용서하소서.
아니 정말로 잊기 위해 가망 없는 노력을 더러는 함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나를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그의 곁에 갈 수 없고
그를 위해서는 백 리라도 뒤로 물러설 수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나이다

‘이화은’의 시 ‘사람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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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9 19)
(
성 야누아리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래아 호반의 휴양 도시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일생일대의 변화를 체험했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가운데 언제나 첫 번째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했던 여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러기에 ‘일곱’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이유는 없습니다. ‘강렬한 악의 세력’에 빠졌던 여인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무튼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전혀 새로운 여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 뒤로는 일편단심 예수님만 섬기며 삽니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을 되갚는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끝까지 지켜본 여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벗어나자 엄청난 변화를 체험합니다. 평생 감사하며 살 만큼 은혜로운 변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악한 기운’이 없는지요? 우리의 삶을 어둡게 하는 ‘악의 세력’을 느낀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내리신 주님의 은총을 우리도 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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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9 21)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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