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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려고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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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려고 하니
누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벌레들은 기를 쓰며 빛이 있는 데로 달려간다. 날개가 있는 벌레도 날개가 없는 벌레도. 나의 창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볼 생각을 못했구나.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구나. 그래서 나의 호주머니 속에는 저 세상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들만 넘쳐났다. 이제는 때가 되어 이삿짐을 꾸려야 하는데, 가져 갈 것들과 가져가지 못할 것들을 나눠 가져가지 못할 것들을 차곡차곡 벌레만도 못한 인생 위에 뿌려야 하는데, 그리하여 무거웠던 짐을 보는 걸 완전히 덜고 힘겨움을 헤집고 그나마 살아남은 힘을 다해 가져갈 것들만 메고 저 길로 떠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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