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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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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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2-09 ㅣ No.116705

 


2017년 12월 9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제1독서 이사

30,19-21.23-26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

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복음 마태

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태국의 어느 스님께서

교도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이분은 태국 불교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종정이 되려는 찰나에

그 자리를 탐낸 다른 승려가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해서

투옥된 것입니다.

이분은 2년간 교도소에

갇혀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스님께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가지고 교도소에서

힘든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이 2년 동안

자서전을 썼고,

특별히 교도소에서 지내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이 안에서는 어떤 설법을

할 필요도 없었고 식사 후에

의무적으로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 필요도 없어서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작은 독방에서

소박하고 정결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릴 수가

있어서 근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것,

자유가 없는 최악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곳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고,

또 들어가더라도 최대한

그 기간을 줄이려고 유능한

변호사까지 선임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곳도 내 자신이

기꺼이 있겠다고 마음을 가지면

자유로울 수 있음을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고통과 시련의 상황이

자주 주어집니다.

이것이 싫다고 또 괴롭다고

하면서 벗어나려고만 한다면

분명히 최악의 상황 속에 있는

내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좋은 점,

기쁨 등을 발견하려고

노력한다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이 일꾼은 과연 누구일까요?

성직자, 수도자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실제로 지금 이 시대에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몫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정작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 주님이 일을 할 수 없게

이렇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주시냐면서

불평불만을 내던집니다.

그러나 앞서 교도소 안에서도

커다란 자유를 발견한 스님의

모습처럼,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주님의 일을

하면서 기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힘듭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선물을 우리 모두가

분명히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의 기도를 할 때

눈과 입은 닫고

가슴을 열라.

(성 요한 비안네)

새사제 초대장이 왔습니다.

기도를 부탁합니다.

"행복은 어디에?"

어떤 분이 아내와 식사를 했던

내용의 글을 적으셨습니다.

아내가 맛있는

식당을 발견했다면서

남편을 끌고서 갔답니다

 이분은 밖에서 외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시큰둥하게

마지못해 쫓아갔지요

. 그런데 아내는 너무나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연신 “와, 정말로 맛있다.

너무 행복해.”를 외치면서

밝게 웃으면서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이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남이 해 준 음식’

이라고 하던데,

아내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을 이렇게 좋아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항상

집에서 밥 먹자고 했네.’

라면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지요.
“당신, 가끔 외식 좀 하고 그래.

혼자 집에서 식사하지 말고.”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말하더래요.
“당신하고 먹으니까 맛있지,

혼자 외식하면

무슨 맛이 있겠어요?”
행복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던

어떤 책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다.”
맞습니다.

 행복이란 별 것 아니지요.

그저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함께 하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요?

그런데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미움의 마음을 가득 가지고

함께 하면 어떨까요?

지옥을 체험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삶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하십시오.

행복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어제 강의했던 서울 대교구

도봉동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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