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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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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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6-17 ㅣ No.112661

 

2017년 6월 17일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코린 5,14-21

형제 여러분,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5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19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복음 마태 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아주 똑똑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머리가 나쁜데?’라면서

‘내 몸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머리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고 하네요.

즉, 몸 자체가 아주 똑똑하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머리가 똑똑하다고 말하지,

몸이 똑똑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요.

그렇다면 몸이 똑똑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의 몸은 너무나 똑똑해서

 글쎄 우리가 하는 말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를 미리 알아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성체조배를 한 적이 없는데,

오늘부터 하루에 3시간씩

성체조배를 할 거야.’라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몸은 이 말을 거짓말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그렇게

기도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체조배를 하는 가운데

바쁜 일이 생각나서 그 자리를

떠나게 만들고, 아예 기도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리게 합니다.
하지만 계속적으로 실천해왔던 것은

몸이 기억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머리로 보낸다고 합니다.

매일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이 분들은 운동을 하루라도

하지 않게 되면 몸이 반응을

해서 몸이 근질근질하게 되고

삶 안에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운동을 하겠다는 것은

진실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몸이 운동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내 몸에게도

나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몸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한 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적인 실천이 중요합니다.

실천이 따르는 말은 몸이

 반응을 일으켜서 내 자신을 진실한

‘나’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똑똑한

우리의 몸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왜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조금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말이 바로 헛된 맹세이지요.

이러한 맹세를 통해서는 결국

내 몸 자체를 거짓투성이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몸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헛된

맹세를 하는

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거짓보다는 진실을 따르는

우리 몸이 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실천하는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누군가 변함없이 곁에

머물러 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이유는 충분하다.

매일 안부를 묻고 일상을

살펴 주는 가족처럼,

한 결 같이 객석을 지켜 주는

관객이 있는 우리의 인생은

그래서 아름답다.

(위서현)

아예 맹세하지 마라!!

"잠시 내려 보면 어떨까요?"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피어있는

예쁜 들꽃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 꽃의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순간 어떤 꽃인지를 검색해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생각났습니다.

따라서 궁금한 들꽃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 제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계속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갔을까요?

아니면 자전거를 멈춰

세운 뒤에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꽃을 검색했을까요?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어떤 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잠시 멈춘 뒤에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비록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겠지만 알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무조건 앞으로 가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멈추면 뒤지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멈춰야

할 때도 있습니다.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멈춰야 비로소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 있으며,

제대로 가고 있는지 방향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휴식의 시간을 가져서

앞으로 더욱 더 힘차게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기쁨도

얻게 될 것입니다.

잠시 내려야 이런 꽃도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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