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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여성선각자 강완숙(골롬바) 순교 216주년 추모(1)[브레이크뉴스-201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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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pgu77] 쪽지 캡슐

2017-07-14 ㅣ No.213033

조선후기 여성선각자 강완숙(골롬바) 순교 216주년 추모(1)
 
주문모 신부가 조선천주교회(朝鮮天主敎會) 최초 여성회장(女性會長)으로 임명
 
박관우 역사작가  기사입력2017/07/14 [09:49]
 
▲ 박관우 ⓒ브레이크뉴스

강완숙(姜完淑)은 조선후기의 여성 선각자(女性 先覺者)로서 41년의 불꽃 같은 생애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강완숙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1795년(정조 18) 조선천주교회 최초의 여성회장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강완숙은 이 땅에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떠났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강완숙은 1761년(영조 38) 5월 충남 내포지방의 양반 가문의 딸로 출생하였는데 구체적으로 진주강씨(晋州姜氏) 문중(門中)의 후손으로서 부친은 참판의 벼슬을 역임한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완숙이 출생할 당시 부친은 아들이기를 원했으나 딸이 태어났다는 것이며 그 모습이 마치 남성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름도 완전할 완(完)자와 맑을 숙(淑)이라 하여 완숙(完淑)이라 지었다고 하는데 이름 자체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강완숙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였다고 하며 부친으로 부터 직접 글을 배워 10여세가 될 무렵 소학(小學)과 열녀전(烈女傳)을 읽었다고 하니 이것만 놓고 볼 때도 어딘가 모르게 남다른 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인간의 생노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하여 하늘이나 상제(上帝)와 음양(陰陽)의 문제까지 관심이 있어서 부친이 그런 문제에 대하여 일일이 답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러한 강완숙이 어느 날인가 가출을 하여 절에서 불경공부까지 하였다 하니 생각할수록 당시로서는 참으로 드문 여성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강완숙의 가정생활과 관련된 부분을 논한다면 덕산의 홍씨가문 후손홍지영(洪芝榮)의 후처(後妻)로 들어갔다는 것인데 그의 조부도 강완숙의 부친처럼 참판의 벼슬을 역임하였다는 것이며, 더불어 전처(前妻) 소생의 아들 홍필주(洪弼周)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완숙의 삶에 일대 전환점(轉換點)이 생기는데 당시 내포지방에 이존창(李存昌)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되었을 때 어린 시절 진리를 찾아 3개월 동안 절에서 불경공부를 하였던 강완숙으로서는 새로운 진리라 할 수 있는 천주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으며, 마침내 이존창을 만나서 교리를 배웠으며, 놀랍게도 마태오 릿치의 저서 “천주실의(天主實義)”까지 읽은 이후 결국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그녀의 인생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한편 천주교에 입교한 강완숙은 시어머니와 전처 아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결국 입교를 시켰으나 남편까지 입교시키지는 못하였다.


또한 예산에 있는 친정 부모까지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결국 입교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전교에 대한 열정이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1791년(정조 15)에 발생한 신해박해(辛亥迫害)로 인하여 정약용(丁若鏞)의 친척(親戚)이 되는 호남의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순교(殉敎)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가 충청도 지방까지 파급되어 당시 많은 신자들이 투옥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이들을 돕지 못할 때 강완숙이 솔선수범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감옥(監獄)에 가서 사식(私食)을 제공하였다가 결국 옥(獄)에 갇히는 상황이 되었으나 박학다식(博學多識)한 모습과 더불어 양반집 부녀자(婦女子)라는 점이 감안되어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완숙의 이런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남편은 강완숙과 불화를 겪게 되었으며, 결국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시어머니를 비롯하여 딸과 전처 아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이후 강완숙은 1795년(정조 19) 조선에서 최초로 거행된 부활전야 미사에서 1794년(정조 18) 12월 조선에 입국하였던 주문모 신부로부터 골롬바라는 세례명(洗禮名)으로 영세(領洗)를 하였으며, 더불어 주문모 신부가 그녀의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높이 평가하여 조선천주교회(朝鮮天主敎會) 최초의 여성회장(女性會長)으로 임명하였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 역사작가. <역사 속에 묻힌 인물들>저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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