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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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기억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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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3-12-04 ㅣ No.6067

12월 4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마태오 7장 21, 24-27절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부끄러운 기억 하나>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는 예수님의 권고말씀을 묵상하다가 언젠가 제가 운전 중에 겪었던 부끄러운 기억 한가지가 떠올랐습니다.

 

한 본당 미사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미리 미리 움직였어야 했었는데, 미적미적하다가 시계를 보니 제 시간에 도착하기에 빠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곡예운전을 거듭해서 본당 가까이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시간이 지났고, 마지막 U턴 신호가 빨리 떨어져주면 좋겠는데,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미사 시간이 이미 7-8분이나 지났고, 휴대폰 전화기는 계속 울리고...마침 상대편에서 오는 차량이 없길래, "딱 이번 한번만!"하면서 재빨리 U턴을 감행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귀신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교통경찰관이라곤 그림자도 없었는데, 마치 저승사자처럼 두 분이 거기 서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타개하나 고민하느라 머리를 싸매야 했습니다.

 

지난번 과속하다 받은 벌점도 꽤 높았기에 이번에 딱지 떼이면 면허정지까지 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지요. 대체로 순순히 면허증을 내놓는 저였지만 이번만큼은 면허정지 걱정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신분데요, 미사시간이 벌써 지나서..."

 

"타당한 이유"와 "특별한 신분"까지 밝혔기에 분명히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시겠지? 하고 기대했었는데,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그 사명감 투철하고 모범적인 교통경찰관께서는 이런 "한 말씀"으로 저를 완전히 찌그러지게 만드셨습니다.

 

"신부님이시라고요? 신부님이시면 더 잘 하셔야죠!"

 

그분의 말씀은 예언자의 말씀과도 같이 날카롭고 의미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쌍날칼 같은 말씀이었기에 아무런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변명의 말도 필요치가 않았습니다.

 

정말 작은 사건이었지만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제 부끄러운 인생의 단면이 그대로 노출된 것 같았습니다.

 

입으로는 나만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외치면서도 알량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반성하게 되었지요.

 

아무리 상황이 급하더라도 원칙을 지켜나가려는 노력, 규칙을 위반했으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만 했을 뿐 제 자신이 실천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시며 구체적인 삶이 뒷받침되는 신앙인으로서의 생활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수도생활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맡은 담당구역 청소, 매일 꼭 이행해야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서 밖에 나가서 행하는 그럴듯한 강론은 너무도 설득력 없는 것임을 절실히 체험합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형제를 철저히 무시하고 깔보면서, 진정한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대림특강에 가서 이웃사랑의 실천을 외치는 것은 정말 속보이는 행동인 듯 합니다.

 

오늘 다시 한번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염원하는 기도,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님의 은총 안에 하나로 합치되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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