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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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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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5-16 ㅣ No.120504

 


2018년 5월 16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20,28-38

그 무렵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5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6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복음 요한 17,11ㄷ-19

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

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다른 사람의

성공 신화를 보게 되면서

“대단하다.”라는 생각과 함께

솔직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제게 큰 자극을

주기도 했지요.

그러나 얼마 못가서

내 자신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성공신화의 주인공들의

시작점은 저보다

더 형편없었습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했습니다.

의욕 넘치게 했던 일들에서

 몇 차례의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서 노력해서

성공을 일구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여기서

‘왜 나는 안 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지금 현재 저는 예전에

가졌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누군가의 성공신화를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나일뿐이다.’라는

명제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신화를 이룬 특별한

사람과는 다른 ‘나’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나’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곧 그 사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 욕심을 조금만 덜어낸다면

돈 한 푼 없어도,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삶을 살고

또 그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 하나는 어떤 것일까요?

모든 이들이 욕심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나일까요?

모두가 돈을 벌고,

모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모두가 인정받는 하나일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런 하나가 아니라,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안에서

주님의 뜻인 사랑의 실천을

이루는데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욕심만을 내세우는 곳에서는

진정한 하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안에서는

서로의 고유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된 삶,

즉 모두가 간절하게 원하는

행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을 드러내면서

 ‘왜 저 사람과 나는 다를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을 펼치는데 있어서

적극적인 사랑의 일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랑의 일치를 위해

주님께서는 간절하게

기도하십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잊지 마세요.

사랑은 전하는 거예요.

(데이비드 에즈라 스테인)


주님의 십자가가 진짜 성공이었습니다.

"어떤 사랑을 실천하십니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윤리적일까요?

친구 골탕을 먹이려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불러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도서관에

불이 난 것입니다.

친구를 구한 것이 되니,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음 달이면 지방선거가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열심히

선행을 베풀지요.

이러한 선행은 윤리적일까요?

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

한 남자가 애인을 때려

죽였다는 끔찍한 사건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인의 이유가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화를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남자의 말은 어떤가요?

이 사람이 말하는 사랑은

말만 사랑이지 사실은

집착일 뿐입니다.

 따라서 옳지 않습니다.

비윤리적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은 두 가지

 사랑을 말합니다.

첫째, 사랑하는 대상을

목적으로서 온전히 사랑하는 것,

둘째는 사랑하는 대상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랑하는 것.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첫 번째인 대상을

 목적으로서 온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랑을 합니다.

자신의 이득을 먼저 생

각하는 욕심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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