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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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vs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글번호 1105373번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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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josemaria] 쪽지 캡슐

2017-10-12 ㅣ No.115374

우리말 신약성경 로마서(3,22.26), 갈라티아서(2,16.20; 3,22). 필리피서(3,9) 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 성경을 보면 이들 구절들에 나오는 믿음은 “fidem Iesu Christi” 로써 이를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뜻이 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말 성경에 이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인간의 믿음)으로 번역이 되어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주석성경의 해석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예수님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 즉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주석성경, 신약, 567쪽 로마서4,3의 각주 참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리말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한 것은 오류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들 성경구절들과 관련한 라틴어 성경과 영어성경을 동시에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로마서(3,22.26)

 

라틴어 {3:22} Iustitia autem Dei per fidem Iesu Christi in omnes, et super omnes, qui credunt in eum: non enim est distinctio:

 

영어 {3:22} And the justice of God, through the faith of Jesus Christ, is in all those and over all those who believe in him. For there is no distinction.

 

라틴어{3:26} in sustentatione Dei, ad ostensionem iustitiæ eius in hoc tempore: ut sit ipse iustus, et iustificans eum, qui est ex fide Iesu Christi.

 

영어{3:26} and by the forbearance of God, to reveal his justice in this time, so that he himself might be both the Just One and the Justifier of anyone who is of the faith of Jesus Christ.

 

갈라티아서(2,16.20; 3,22)

 

라틴어 {2:16} Scientes autem quod non iustificatur homo ex operibus legis, nisi per fidem Iesu Christi: et nos in Christo Iesu credimus, ut iustificemur ex fide Christi, et non ex operibus legis: propter quod ex operibus legis non iustificabitur omnis caro.

 

영어 {2:16} And we know that man is not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but only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And so we believe in Christ Jesus, in order that we may be justified by the faith of Christ, and not by the works of the law. For no flesh will be justified by the works of the law.

 

 

라틴어 {2:20} Vivo autem, iam non ego: vivit vero in me Christus. Quod autem nunc vivo in carne: in fide vivo Filii Dei, qui dilexit me, et tradidit semetipsum pro me.

 

영어{2:20} I live; yet now, it is not I, but truly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ough I live now in the flesh, I live in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who delivered himself for me.

 

      

라틴어 {3:22} Sed conclusit Scriptura omnia sub peccato, ut promissio ex fide Iesu Christi daretur credentibus.

 

영어 {3:22} But Scripture has enclosed everything under sin, so that the promise, by the faith of Jesus Christ, might be given to those who believe.

 

필리피서(3,9)

 

 

라틴어{3:9} et inveniar in illo non habens meam iustitiam, quæ ex lege est, sed illam, quæ ex fide est Christi Iesu: quæ ex Deo est iustitia in fide

 

영어{3:9} and so that you may be found in him, not having my justice,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of the faith of Christ Jesus, the justice within faith, which is of God.

 

 

 이러한 성경 구절들을 바탕으로 하여 마르틴 루터가 소위 종교개혁의 주요 슬로건인 '오직 믿음' 교의(敎義)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믿기만하면 죄를 씻고 의롭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가톨릭 주석성경에서는, “(인간의) 믿음이 의로움을 받아 낼 수 있는 무슨 법적인 공로로 간주된다는 뜻이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못 박고 있습니다(주석성경, 신약, 567쪽 로마서4,3의 각주 참조).  그러니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교리는, 마치 인간의 믿음으로 구속된 것처럼 인간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은, 믿음에 대한 왜곡이며 이는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아담의 교만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간의 공로'로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속되었음에도(에페1,7), 오직 인간의 믿음으로 구속되었다고 나발을 불어대는 것은 이단의 논리이기에,  철저히 배격해야 할 주장입니다. "오직 성경"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성경을 왜곡한 이들의 주장은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이는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잘못 번역하였고, 그 오역된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오직 믿음이라는 교의를 만들었으니, 그 교의는 잘 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런데, 최근 개신교 내에서도 위에서 예를 든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진리의 길을 걷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바울신학, 제임스 던,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14.8, 524쪽 참조). 

 

위에 예시한 성경 구절들은 의화(義化)에 관한 신비를 다루고 있는 구절들인데,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믿음으로 과연 의롭게 될 수 있느냐 하는 주제를 놓고 보면 답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성경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즉 예수님의 하느님에 대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은 예수님 안에 살고 있던 우리 인간을 그저 구속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코린1,30; 로마3,24 참조). 인간은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자기의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고,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죄를 씻고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에페1,7 참조).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믿음이라는 것도 인간이 스스로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선물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에페2,8-9 참조). 인간의 믿음으로 인간 자신들의 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한 아담의 교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창세3,5 참조). 그러니 인간의 믿음만으로 구속되었다는 개신교의 논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한 철저한 이단의 논리이며, 하느님의 3대 위업중 하나인 "구속"의 위업을 폄훼하는 주장입니다. 


더욱이 구속의 Mechanism을 보면 확실해 집니다. 예수님의 강생과 더불어,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예수님의 인성 안으로 옮겨주셨습니다(콜로1,13-14; 요한6,37 참조). 그런 다음 모든 인류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구속을 가능케 한 수단은 예수님의 성혈이며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개신교의 의사이며 신학자로 세상에 알려진 독일 태생이면서 프랑스 국적을 가진 A. 슈바이쳐 박사의 이신칭의에 대한 반박논리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는 일찍이 바오로 신학의 핵심인 예수님 안에서로 정의되는 <<그리스도 신비주의(Christ-Mysticism)>>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바오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안에(Being-in-Christ)라는 그리스도 신비주의구속론이 주() 분화구이고, ‘이신칭의는 변두리에서 형성된 보조 분화구이다라고 하며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믿음 교의를 평가 절하하고 있습니다(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Albert Schweitzer, The Jones Hopkins University Press, p.225 참조). 그는 바오로 사상을 깊이 연구한 후에 내린 결론으로, 종교개혁자들이 바오로의 서간문(로마서, 갈라티아서, 필립비서 등)을 기초로 이신 칭의논리를 구성하였으나, 그들이 바오로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반쪽 이론이라며, ‘오직 믿음교리를 비판한 최초의 바오로에 관한 새 관점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구속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저(freely) 이루어 졌음에도(로마서3,24 참조),  소위 종교개혁자들이 인간의 믿음에 의해 구속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수님의 구속위업을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 인위적(人爲的)인 그 무엇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그리스도의 신비주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오로의 구속론은 성격을 달리하는 두 가지의 표상으로써, 구속에 있어서 의사 육적 개념(quasi-physical conception)지적 개념(intellectual conception)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지금까지 바오로의 연구는 일방적으로 후자의 지적 개념에만 국한 시켜서 해석해 왔다.(The mysticism of Paul the Apostle, The Jones Hopkins University Press, pp.219-220 참조)”

 

이와 같이 그는 소위 종교개혁자들이 바오로의 지적개념(intellectual conception)만으로 칭의론을 만들었고, 바오로 구속론의 기본 원리인 그리스도의 육적 개념 즉 그리스도의 () 안에서 죄를 처단하신(로마8,3)” 원리를 무시하였다고 비판합니다. 그에 의하면, 구속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오로에게 중요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바오로의 윤리적 권고나 믿는 자에 대한 충고들이 바오로 서간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종말론적인 긴장을 바오로 신학에서 제거해 버릴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바로 믿음만을 부르짖는 신앙이고, 종말론적 대망에서 사랑을 전제로 탄생한 바오로의 윤리사상을 간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루이사 피카레따가 증언한 예수님의 말씀도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어머니 마리아님에게 잉태되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모든 영혼들을 나와 함께 나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였고, 또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죽음도 잉태하였다(천상의 책 제1294-2 참조)”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분 안에 살게 된 인간을 당신의 성혈로 그들을 구속하셨습니다(로마3,24; 1코린1,30; 에페1,7 참조). 바오로의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이 예수님을 믿는 인간의 믿음만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아니며, 예수님 안에 살던 인간은 예수님의 피로써, 죄 씻음을 받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 구속(救贖)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즉 인간의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곧 예수님의 하느님에 대한 순종으로 인하여 그 안에 살고 있던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속된 것이(에페1,7 참조) 올바른 해석이며, 따라서  위에든 구절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성경을 수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보다 깊이 알고자 하시는 분은 필자가 쓴 "루이사의 증언-공동구속"-도서출판 맑은샘, 31쪽~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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