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170809 -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임형락 이냐시오 신부님

스크랩 인쇄

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8-09 ㅣ No.113738




2017
08 09 () 가해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민수기 13,1-2.25-14,1.26-30.34-35
마태오복음 15,21-28


임형락 이냐시오 신부님


저는 신부로 살면서 가끔 신자나 비신자 분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이 정말 계시다고 믿습니까?> 생각해 보면 정말 황당한 질문입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해서 이런 답을 합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믿고 생각하고 있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 지 모르지만, 최소한 당신이 생각하는 하느님이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질문을 잘못하신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바꾸어서 신부님이 믿는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인가 하고 물어주십시오. 그리고 그분과 지금 어떤 관계인가 하고 물어주십시오.>

저는 많은 신자 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냉담해지는 것을 봅니다. 아니 하느님과의 관계가 냉담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사람들과의 관계가 냉담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을 찾고 믿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생각 속에서 그려지는 막연한 하느님을 찾고 있고 믿고 있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설사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알기는 하지만 쉽게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참된 모습을 열어 보여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에 관해 사고하는 새로운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 줌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오신 것이었습니다.

요한 복음 1 18절의 말씀입니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 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 그런데 지금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하느님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
정말 변화는 가능한가>라는 역서의 저자인 '존 퓔렌바흐' 신부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해서 3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첫째, 하느님이 우리를 항상 사랑하신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끈질긴 관심과 넉넉한 사랑에 언제나, 어느 때고 의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용서하신다. 내가 아무리 내 삶을 엉망으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내가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하느님은 항상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제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있다고 느끼든 간에 나와 함께 느끼고,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자의 태도를 눈여겨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이 열어 보이신 참된 하느님의 모습을 자신의 삶 안에 받아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을 장하다고 칭찬하십니다.

오늘날 하느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과연 예수님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이 새로워졌습니까? 혹시 여전히 자기 생각 안에 하느님의 모습을 고집하면서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임형락 이냐시오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609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