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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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7 목/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쟁이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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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8-16 ㅣ No.113954




연중 19주 목, 마태 18,21-19,1(17.8.17)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쟁이

 

오늘 복음은 일상생활에서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칩니다. 우리는 서로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함을 잘 압니다. 그렇다면 계속 나를 불편하게 하고 해코지하는 형제의 잘못을 언제까지 참고 용서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18,22)

예수님께서는 끝없이 순환되는 앙갚음과 폭력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무한한 용서를 하라고 하십니다. 나아가 무자비한 종의 비유(18,23-35)를 들어 모두가 지녀야 할 자비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하늘 나라는 헤아릴 길 없는 자비심을 지닌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습니다.

임금은 만 탈렌트나 되는 엄청난 빚을 진 종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 종은 엎드려 절하며 다 갚을 테니 참아달라고 청합니다. 사실 그 빚은 그의 품삯은 물론 온 가족이 다 일해 갚아나가도 살아생전에는 갚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그걸 다 갚겠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이지요.

그래도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에게 자유를 주고 부채를 모두 탕감해줍니다. 그런데 그 종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합니다. 사실 그의 동료가 진 빚은 자신이 탕감 받은 액수의 60만분의 일에 지나지 않은 극히 적은 액수였지요. 그런데도 모질게 군 것입니다.

무자비한 종은 엎드려서 갚을 테니 참아달라고 간청하는 동료의 청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무자비한 종의 냉혹한 처사를 전해들은 주인은 그를 고문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합니다. 그가 진 빚은 죽기 전에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액수였으니, 그는 ‘영원한 죽음의 선고’를 받은 셈입니다. 무한한 자비를 입고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용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용서는 몇 번까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자비의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조건 없이 늘 자비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결합된 사람은 거저 내어주는 사랑에 따라 살아야겠지요. 사실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쟁이들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찾아다니며 용서해도 주님의 자비를 갚을 길이 없음을 잊곤 합니다. 용서 한번 하고는 도덕적 만족감이나 상대방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용서는 내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품고 떠나는 사랑의 순례입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연민의 마음으로 느끼고, 하느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느님 자비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용서는 계산이나 이성적 분석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해도 또 해도 모자라는 게 용서입니다.

용서란 조건이 갖춰지면 채워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면 의당 지니고 있는 ‘사랑의 DNA’입니다. 따라서 용서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너그러움과 내가 소유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쉴 새 없이 나에게 베푸시는 그 자비를 전하고 공유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런 용서를 한도 끝도 없이 항구히 실행하라고 권고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처사야말로 자신을 죽음에 감옥에 가두며, 자신을 자해하는 비참한 바보짓임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용서를 거부하는 냉혹함의 희생자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인 것을 알아차리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오늘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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