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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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남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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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9-01-21 ㅣ No.126972

 

 

 

 

2019년 다해 연중 제2주간 화요일

 

 

<남의 자유를 빼앗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복음: 마르코 2,23-28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일본 영화 너는 착한 아이의 주인공은 남들이 볼 때는 아이를 참으로 잘 대해주면서도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집에 있을 때는 아이에게 손찌검을 자주합니다. 안하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죄책감에 혼자 울기도 하지만 또 제자리걸음입니다. 우리가 짐작할 수 있듯이 어머니는 어렸을 때 똑같은 학대를 당하며 자랐습니다. 받은 대로 해 주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영화에서 이 엄마는 자신과는 다르게 아이를 대하는 옆집 어머니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도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학대받으며 자랄 때 옆집에 어떤 할머니가 혼나고 울고 있는 아이를 안아주며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라고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매보다 할머니의 포옹을 믿으며 자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폭력을 쓰는 주인공 어머니를 안아주며 같은 말을 해 줍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매는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폭력입니다. 소중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통제하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통제는 존재에 대한 폭력입니다. 존재는 폭력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존재는 존재 자체로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통제를 당하며 자란 아이는 법이 존재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습니다. 통제의 수단은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본인 스스로 믿지 못하기에 타인도 같은 방식으로 통제하려합니다. 부모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며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께 따집니다. 예수님은 다윗도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었는데 당신의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그것으로 허기를 좀 때웠다고 무엇이 문제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법에 의해 통제받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법을 통해 자유로워지라고 주신 것입니다. 법으로는 우리가 변할 수 없음을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통제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그렇게 통제를 당해야만 하는 수준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기계가 아니라 자녀를 탄생시키려고 하십니다. 자녀는 율법으로 탄생되지 않고 믿음으로 탄생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 당신이라고 하시며 당신이 안식일을 통제하지 안식일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는 법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부모님의 자녀라는 믿음에 의해 자신을 이깁니다.

 

 

자유를 주는 것은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통제하는 것은 너는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통제를 받아야하는 것은 가축이나 물건입니다. 자녀를 지나치게 통제하면 그렇게 누군가에게 통제를 받아야만 온전할 수 있는 자존감 없는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듯 타인도 그렇게 통제하며 비인간적인 사람이 됩니다.

 

율법으로부터 통제받지 않으려면 그 율법의 목적인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죄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죄를 이겨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면 참으로 율법의 주인이 되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믿음으로 죄를 이기게 되었다면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하지만 내가 죄인일 때 나는 율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고 그러면 또 누군가를 율법으로 가두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가두는 사람이라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통제받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는 법이 없어도 자녀입니다. 우리는 아무 통제가 없어도 우리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통제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의로 달리신 것입니다.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법으로부터 자유로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남을 통제하는 사람은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먼저 내가 믿음으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타인도 법이 아닌 사랑으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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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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