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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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9 -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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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8-09 ㅣ No.113737




2017
08 09 () 가해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민수기 13,1-2.25-14,1.26-30.34-35 / 예레미야서 31,1-7
마태오복음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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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 민수기 13,1-2.25-14,1.26-30.34-35

그 무렵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1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 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 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 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 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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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예레미야서 31,1-7

1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이 제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 3 주님께서 먼 곳에서 와 그에게 나타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다시 세우면 네가 일어서리라. 네가 다시 손북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밭을 만들리니, 포도를 심은 이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리라.
6
에프라임 산에서 파수꾼들이 이렇게 외칠 날이 오리라. ‘일어나 시온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 ’”
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에게 기쁨으로 환호하고, 민족들의 으뜸에게 환성을 올려라. 이렇게 외치며 찬양하여라. ‘주님, 당신 백성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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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복음 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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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08 09일 류한영 베드로 신부님)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이스라엘 백성은 파란 광야에서 보여 준 그들의 불신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게 됩니다. 인간의 불신은 결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딸의 치유를 얻어 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에 자비하신 모습과 달리 여인의 간청을 무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무시할 때 쓰던 ‘강아지’라는 표현도 쓰십니다. 그렇지만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하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의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강아지들도 빵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으니 딸에게 ‘부스러기 은총’이라도 달라고 간청합니다. 빵의 기적에서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된 것처럼, 그녀는 넘치는 하느님의 은총이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은 인종과 국경을 넘어섭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가나안 여인의 용기와 인내는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모욕과 홀대 받는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겸손하며 구원을 불러오는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어머니를 통해 자녀들에게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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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0803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복음을 보면 가나안 여인이 마귀 들린 딸을 치유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여인이 계속 애원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만 충격적인 말씀을 던지지 않습니까?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너무나도 모욕적인 말씀이지요.
여기서 자녀들이란 이스라엘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들을 죄인 취급하며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지요. 심지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이런 정황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자 가나안 여인을 짐짓강아지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여인도 배려하신 것이지요.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듣고는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특권을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의 자비에 호소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토록 자신을 낮추어 지혜롭게 처신하는 그 여인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여인의 딸을 치유해 주어야 하지요. 여인은 당당히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하느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외관이 아니라 내면의 문제임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오늘 저 가나안 여인에게 배울 점은 많습니다. 거절당했음에도 다시 매달리는 끈질김, 상대방이 말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들으려는 집중력, 상대방을 상대방의 방식에 맞추어 설득하는 겸손함!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자세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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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0805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감동에 가까운 흔하지 않은 칭찬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예수님을 이깁니다.
마태오 복음을 살펴보면,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민족들이나 사마리아인들에게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양들에게 가라고 명하시고(10,6),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께서도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셨다고 말씀하실 뿐, 승천하실 때에야 비로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러니 아직은 가나안 여인의 청을 들어주실 때가 아니지요. 그런데도 가나안 여인은 자신이 청하는 것을 얻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빵이든 부스러기든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환영하시든 박대하시든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믿음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명백합니다. 사랑 때문에, 딸을 살리려는 어머니의 마음에서입니다. 딸을 구해 주실 분이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기에, 다른 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가로막으신다 해도 끝까지 매달립니다.
사실강아지라는 표현은 지독히 경멸하는 단어였지만, 이 여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뾰족한 마음이 아니라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의 자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나름대로의 고통과 시련이 있겠지요. 이 가나안 여인처럼 그분의 손길을 믿고 인내하면서 겸손하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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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0806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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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0807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
성 식스토 2세 교황과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가예타노 사제 기념일)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부인의 청을 거절하시자, 그 여인이 예수님께 다시 한 번 청하며 했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들으시고 그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십니다. 여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부스러기 은총이 그 가정에 내려진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때 배불리 먹고남은 조각’(부스러기)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 부스러기들은 그저 먹고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가 아닙니다. 열두 광주리에 부스러기들이 가득 담겼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 곧 열두 사도 위에 세워진 교회에 이제부스러기 은총이 충만히 주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부스러기 은총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다른 민족인 가나안 여인에게까지 주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빵의 은총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그 은총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부스러기 은총이라도 간절히 원하였고, 이를 통하여 자신의 딸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다른 민족들이든 모두에게 부스러기 은총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내리신 은총은 부스러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 스스로 빵이 되시어 당신 백성인 교회에빵의 은총을 새롭게 내려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에 힘입어 빵도, 부스러기도 모두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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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0808일 전숭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예수님 시대에 여인들은 사회에서 인격적으로 존중 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방인 여인들은 유다인들에게 더 큰 차별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다가와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하고 말합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딸을 고치게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을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들은 사회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는 것이 차별과 불평등의 이유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자신들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멸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도 예수님 시대의 이방인처럼 취급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차별과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넓고 깊습니다. 온갖 차별과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마음은 멍들어 있습니다. 그들의 아픈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 줄 사람은 먼저 우리 신앙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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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0803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당신께 다가오는 가난한 처지의 여성들, 병자들,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시는데, 오늘따라 당신께 애원하는 한 여인에게 냉정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도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을 무시할 때 했던강아지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시면서 말입니다.
신비 신학자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지요. “우리가 자기 자신과 처절한 싸움을 하여완전한 무’()에 이를 수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은완전한 전부’(全部)이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으려면 스스로 완전히 부서지고 버려져서 온전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냉정한 모습을 보이신 이유는 가나안 여인을 무시해서도, 그에게 관심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드러내 보여서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고백입니다. 정지된고정 관념이나신념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 알량한 지식, 자존심 등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가 되어 주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처럼주님, 저는 당신 앞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고 스스로 부서지고 없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전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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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08 04)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우리는 2009년 예수 성심 대축일(6 19)부터 2010년 예수 성심 대축일(6 11)까지 ‘사제의 해’를 보내면서 진심으로 이 땅의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사제들이 참으로 참회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자신에게 맡겨진 성무를 거룩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주님께 간절히 청원하였습니다.
오늘은 모든 사제의 수호성인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의 축일입니다. 이 축일에 그분의 거룩한 생활을 기억하며, 그분이 즐겨 바치셨던 ‘사랑의 기도’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저의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나이다.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하느님만 사랑하기를 바라나이다.
한없이 좋으신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나이다.
한순간이라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느니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다 죽기를 더 바라나이다.
저의 하느님,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나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따스한 위로가 없기에 저는 지옥이 두렵나이다.
저의 하느님, 순간순간마다 제 혀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도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제 마음이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기를 바라나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고통 받고
고통 받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어느 날 하느님을 사랑하다 죽는 은총을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느끼며 죽는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제 인생 막바지에 다가갈수록
하느님을 향한 제 사랑을 더하고 채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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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08 05)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세상이 뿌옇게 보입니다. 산도 나무도 모두 흔들거립니다.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합니다. 강풍은 온데간데없고, 하늘은 어느새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럴 때의 자연은 분명 ‘모순 덩어리’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주위에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을 넣습니다. 그들이 더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그만큼 여인은 애절하게 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묵묵부답이십니다. 그토록 다정하시고, 어떤 환자라도 낫게 하시던 분께서 외면하고 계신 겁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끄떡도 하시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 여인은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십니다. 강풍은 지나갔고, 햇볕이 돌아왔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여인은 울먹이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녀의 재치가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녀의 ‘기다림’이 주님의 기적을 모셔 왔던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은 새로운 세상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며 살았을 것입니다. 기다림의 보상은 언제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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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08 06)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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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08 08)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부모가 자녀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자녀가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선물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섭섭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적을 베풀고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 주었으나, 사람들의 관심은 기적에만 쏠렸지 그 기적의 원인인 하느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이방인 여인이 하느님의 능력을 청합니다. 마귀 들려 고통 받는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십사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하느님의 능력이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매달립니다. 여인의 간청은 집요하였습니다. 끊임없는 청원에 제자들이 스승께 말하였습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제자들까지도 의아해 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지혜롭게 답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스라엘에 먼저 자비를 베풀고도 남는 것이 있다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인의 겸손에 예수님께서 움직이셨습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강아지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표현이 그러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짐짓 이 말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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