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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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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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6-16 ㅣ No.112643

 

2017년 6월 16일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제1독서 2코린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

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

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어떤 형제님의 고

민을 들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비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전공도 아니고

또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매일 똑같은 일만

계속하다보니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종종 자신의 자리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만납니다.

심지어 신부님들 중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있는 본당 신자들은

정말로 유별난 것 같아요.

사제를 이렇게

힘들게 할 수 있을까요?

이 본당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희망이나 비전이 없다는 말은

자기 안의 착각 속에서 나오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희망이나 비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상대방에게 희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내 인생을 책임져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주체가 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즉, “희망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분명히

절망보다는 희망을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희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세운 기준을 철저히 따르며

살아가는 주체적인 삶을 원하십니다.

여기서 타협을 하게 되면 어떨까요?

이 정도는 괜찮아,

한 번만, 마지막으로,

남들도 하는데 뭐....

등등의 타협이 이루어지면

나의 주체성이 사라지게

되면서 대신 남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네 오른 눈이 죄짓게 하거든

빼어 던지고

네 오른손이 죄짓게 하면

잘라 던져 버리라는

좀 심하다싶은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따른다면

어쩌면 모두가 장애인이

 되고 말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꼭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과 멀어지는

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하느님 뜻에

맞게 살겠다는

희망과 비전을 가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 눈치, 세상 눈치가 아니라,

또한 세상과 타협해서는 절대로

이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눈치보기와 타협으로

생길 수 있는 조금의 틈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철저한 나의 노력과

정성으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자신의 희망과 비전을

비로소 완성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커다란 비전과

희망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요?

구원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기 위해서 이제 세상과

타협해서 생기는 틈을

메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분명히 후회하지 않는

행복의 삶을 얻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갖는 건 절망할 위험이,
시도를 하는 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글렌 반 에케렌)
어제 성지에서
삼겹살 파티가 있었습니다. ㅋㅋㅋ
"오래 사는 법"
(‘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나라에 오래 사는 것이
소원인 왕이 있었다.
그는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약초를 백방으로 구해다 먹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기력은 쇠했다.
조급해진 왕은 현자를 불러 물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겠소?”
현자가 대답했다.
 “인생에는 두 개의 점이 있습니다.
태어나는 점과 생을 마치는 점이지요.
장수하려면 이 두 점을
길게 늘여야 합니다.”
“맞소. 그래서 애를 썼는데도
나이 들수록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걱정이오.”
“점 사이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꾸준히 건강 관리하고
병을 고친다 할지라도
마지막 날은 오는 법이니까요.”
왕이 실망하자 현자가 덧붙였다.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왕은 반색하며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점과 점 사이의 길을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곁에 나 있는 풀꽃을 들여다보고,
지그재그로 걸으며 낯선 곳도
경험하며 가는 것입니다.
가슴 뛰는 순간,
사랑하며 살았던 순간만이
마음속에 남아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단순히 오랜 시간을
이 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앞선 이야기의 내용처럼
작은 일상의 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이 땅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이 더 커질 것입니다.
이 모습이 단순히
래 사는 것보다
훨씬 멋진 삶이 아닐까요?
여유있게 바닷가를 걷고 싶어요.
사진은 덕적도의 서포리 해수욕장.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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