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일)
(백)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대림 1주일/구자윤비오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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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2-08 ㅣ No.116683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 1주일

 †찬미예수님!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교회의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이 대림 시기는 구원의

때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탁한

세상의 오류와 죄악에

합류해서 그 안에 젖어

살았던 생활을 벗어 놓고,

이제 영혼과 육신 모두를

정갈히 가다듬고 주

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준비가 되었던지

 안 되었던지

분명히 오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죽음 또한 준비가 됐던지

안 됐던지 피하거나

늦출 수 없이 맞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시는

주님은 물론이고,

또 자신의 죽음 역시

잘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고 복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수차례에 걸쳐서

거듭거듭 말씀해주시고

또 깨우침도 주십니다.

그렇기에 그 준비는

어떤 누구도 아닌

 각자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누가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의 죽음을

대신해줄 수도 없고 구원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도

부모나 이웃도 결코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고 죽음입니다.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오늘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절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과 죽음을 좀 더

가치 있게 이끌기 위한

 전례에 따라서 이러한

은총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의 전례주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주어지는 그날의

전례말씀과 전례시기에

따른 가르침에만

마음을 쓰고 받아들여도

마음의 토양은 풍요로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비와 축복의

빛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그 햇빛과 비를

어떻게 받아들여서

활용하는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생각하더라도

같은 이치입니다.

 태양열과 풍력과 수력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도 못 받고

그냥 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도 명백하고 단순한

진리를 중요하게

각하지 않고 별 생각 없이

지나쳐버리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대림 시기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시간이 아니라,

 다시 오신다는 ‘재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인류가

지금 까지 걸어온

모든 역사와 우리 각자의

삶에 내려질 심판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우리의

죽음은 올수도 있고

안 올수도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만 아무도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

어느 누구도 주님이

오시는 시간을

앞당길 수도 없고

늦출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삶을 성

심껏 살면서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순간

영원을 생각하면서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또 현재의 시간을

 함부로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살아 낸 세상과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

분명히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맞는 생활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각자가

속한 생활터전에서

자신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주님의 뜻에

온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이 아닌 제 뜻대로,

제가 원하는 것만을

얻기 위해서 온 힘을

쏟고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세상의 재물과

영예와 권력을 잡기

위해서 허둥대면서

살다가 주님이 오시는

시간을 맞고

 또 자기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이 맞게 됩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맞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속담에

“천 날 살줄만 알았지

하루 죽을 줄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한 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깨어 준비하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십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준비 없이 맞게 되는 것이

자신의 종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막연한

미지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우리의 현실 속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을

온전히 보여 주셨습니다.

 묵시록 4장 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신앙입니다.

특히 우리는 바오로의

가르침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이제는 행동이 따르는

삶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자신의 믿음과

마음자세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시작이며 마침이신

하느님께 우리를 온전히

 의탁하고 따르는

일만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깨어 기다리는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는

신앙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니라,

 신앙과 생활이 일치된

말 그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찾아 올 예수님의 재림과

우리의 죽음을 준비 없이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반갑고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이 되도록

늘 깨어 준비하면서

주님께서 오실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잠시 묵상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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