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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달인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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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4-19 ㅣ No.111545

 

소통의 달인

 

- 윤경재 요셉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24,29~32)

 

 

 

저는 처음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말을 거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대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주어 쓸데없이 오해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저처럼 차갑게 보인다, 거만하다, 뻣뻣하다 등등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제법 나아졌다고 집사람에게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대화와 소통의 전문가들이 충고하는 방법 중에 제가 쉽게 받아들였고 효과도 봤던 내용을 공유할까 합니다. 첫 번째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거라고 합니다. 무엇이든 좋으니 상대방이 알만한 것을 찾아 배움을 청하는 게 대화를 시작하는데 제일 좋다고 합니다. 표정도 진짜 잘 몰라서 묻는 태도가 우러나야 한답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는데 정원이 잘 가꾸어진 집에서 주인인 듯한 사람이 보인다면, 이렇게 말꼬를 튼다고 합니다. “항상 저 노란 꽃 이름이 궁금했었는데 무엇이죠?” “저는 조경이 이렇게 훌륭한 집을 보면 부러웠어요. 몇 가지나 심으셨어요?” 또 질문하더라도 반드시 대답을 하게 이끄는 식으로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만 자기가 무얼 아는 듯한 인상은 가능하면 주지 않는 게 좋다고 합니다. 자칫하다가는 전문가 앞에서 문자 쓰는 실수를 범하기 딱 좋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이야기꾼인 루카복음서 저자도 예수께서 얼마나 소통의 달인인지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열심히 대화하며 걸어가는 두 사람 곁에 잠시 아무 말 없이 따라 걸으셨습니다.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설명이 이런 정황을 나타냅니다. 이분이 누군지 잘 아는 독자로서는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문학적 긴장감을 한껏 높였다가 한꺼번에 해소하는 루카저자의 기법이 대단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궁금하다는 듯이 걸어가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논쟁하시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마도 두 사람이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며 토론하였나 봅니다. “서로 주고받느냐?”라고 해석한 그리스어 동사 ‘antiballo’는 여기서만 나오는데 우리말 해석보다 조금 강렬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약간 미안한지 클레오파스가 발걸음을 멈추고 침통한 가운데에서도 낯선 사람에게까지 상황 설명을 자세히 하였던 것입니다. 자기 의견에 대해 동조를 구하려는 심정과 핀잔하는 듯한 말투가 드러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예수께서는 그럼에도 또다시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십니다. “무슨 일입니까?” 당사자의 의견을 막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들의 진술을 다 듣고 나서 새로운 시각을 보충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들의 대화가 수난의 수수께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설왕설래 한 것이며, 메시아의 수난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내용을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해주셨습니다. 루카저자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특별히 예수님 수난에 대하여 당위를 나타내는 조동사 ‘dei’6회나 사용하여 강조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까지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넘겨주셨습니다. 당신은 나그네로서 머무시고, 타인을 받아들일지 말지 하는 문제는 두 사람에게 일임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욥기9,11)

 

주님께서는 늘 내게 지나가시는 이웃으로, 도움을 청하는 나그네로 찾아오셨습니다.

 

요즘 제가 기분 좋게 보고 있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한 끼 줍쇼.’입니다. 저녁 시간에 출연자들이 여러 집을 돌며 초인종을 누르고 식사 초대를 청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하룻저녁에 수도 없이 거절당하다가 모처럼 초대하는 가족이 있으면 들어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준비된 반찬으로 모여 식사를 합니다. 그 가족들이 사는 모습을 통하여 현재 우리사회의 솔직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4대가 모여 사는 집,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워낸 집, 옆집과 왕래하면서 지내는 집, 부부 두 식구만 호젓하게 사는 집 등등 횟수가 거듭될수록 재미가 더합니다. 밥상공동체가 주는 훈훈함을 일깨워 주어 보기 좋았습니다. 그 가족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클레오파스와 다른 제자는 빵을 나누는 식탁 공동체에서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교회는 이런 식탁공동체 정신을 본받고 지속하기 위하여 본당 구역모임을 돌아가며 각 집으로 초대하여 묵상나누기 7단계와 기도를 하고 간단한 식사 대접하기를 권합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이런 모임을 실천하는 구역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저희 본당만 해도 남성구역이 30구역 가량 되는데 실제로 매번 각 가정을 찾아다니며 구역모임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편리하게 성당 교리실이나 음식점에서 간략하게 때우곤 합니다. 다행히 제가 속한 구역은 형제자매님들이 솔선수범하여 묵상나누기와 식사대접을 제대로 실천합니다. 그때마다 얻는 체험이 아주 큽니다. 어렵겠지만, 다른 구역들도 이런 정신을 이어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때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아 보이는 진리는 이렇게 말이 필요없는 만남의 언어로 다가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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