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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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행자, 사랑의 신비가 -질그릇 속에 담긴 보물- 이수철 프랑치스코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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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7-06-16 ㅣ No.112640



2017.6.16.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2코린4,7-15 마태5,27-32


이수철 프랑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사랑의 수행자, 사랑의 신비가

-질그릇 속에 담긴 보물-



우리 믿는 이들은 누구나 질그릇 같이 허약한 존재이지만 실은 허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참 좋은 보물인 파스카의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2코린4,7). 

하여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우리 역시 파스카의 신비를 사는 사랑의 신비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파스카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신비가의 삶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4,8-10)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백절불굴, 칠전팔기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을 살게 합니다. 

부단히 죽음에서 생명을, 어둠에서 빛을, 절망에서 희망을 살게 합니다. 


아주 예전에 써놓고 위로와 힘을 받은 ‘담쟁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 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 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타오르다 가을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삶에도 지칠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하늘 향해 타오를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1998.6.3.


19년전 이맘때쯤 시가 여전히 현실성을 띠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19년전 담쟁이는 지금도 역시 거기 그 자리에서 초록빛 열정을 빛내며 줄기차게 담벼락을 타오르고 있으며 

저 또한 여기 제자리에서 한결같이 살고 있으니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그대로 파스카의 삶을 상징하고 있는 담쟁이입니다. 


어제처럼 오늘 복음도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답을 줍니다. 


분노가 살인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듯이 음욕이 간음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간음의 뿌리인 음욕의 절제와 정화가 우선입니다. 

바로 마음의 순수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

또 네 오른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마태5,28-29ㄱ.30ㄱ).


글자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라면 세상 남자들은 불구자들 천지일 것입니다. 

간음이란 죄의 엄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충격 요법의 표현입니다. 


식욕, 성욕, 물욕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입니다. 

이들 욕구의 근절이 아니라 절제와 정화를 위해마음의 순수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실 믿는 이들의 모든 수행의 영성훈련도 마음의 순수를 통한 절제와 정화, 그리고 내적 자유에 있습니다.


바로 이런 영성훈련의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은총의 샘이 

바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보물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내적 힘의 원천이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어 마음의 순수를 살게 하십니다. 


하여 부단한 수행자의 삶이 필수입니다. 

저절로 신비가가 아니라 이런 수행자의 삶이 있어 사랑의 신비가로 살 수 있습니다.


역시 문제는 내 안에 있고 답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어쩔수 없이 후대의 교회는 이혼에 예외 규정을 두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이혼불가에 있습니다. 


한 번 맺은 부부관계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유효하다는 예수님의 결혼관입니다. 

어떻게 평생을 한몸의 부부로 해로할 수 있을까요. 


답은 파스카의 주님 안에 있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살아있는 보물이신 파스카의 주님과 일치되어 살 때 그 사랑으로 한 평생 살 수 있습니다. 


이래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치의 중심에 파스카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분도 수도자들이 평생 한곳에서 정주의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파스카의 주님과 하나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마음의 순수를 회복시켜 주시어 

우리 모두 사랑의 수행자, 사랑의 신비가로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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