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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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나일뿐이다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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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3-15 ㅣ No.110744

 

 

나는 그저 나일뿐이다

 

- 윤경재 요셉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2~28)

 

 

 

어느 성당 헬레나 자매가 레지오 마리아 활동으로 본당의 날 판매 봉사를 하였습니다. 기부 받은 물건을 판매해 성전 건축기금으로 모으는 자리입니다. 마침 봉사자라는 어깨띠가 없어 띠를 차지 않고 외부 손님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손님들이 자기를 종업원으로 아는 듯했습니다. 말투나 자세가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느낌을 받자 속으로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손님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지라 어서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습니다. 공연히 화장실만 들락거렸습니다.

 

얼굴이 굳어지며 손님들에게 상냥하게 대할 수 없게 된 자신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봉사를 하러 나온 것인지 갈등을 하러 나온 것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봉사자 표시를 확실히 해야 하겠구나 여겼습니다. 옷도 화려하게 입고 공주처럼 우아하게 있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기념일에 받은 악세사리 하나쯤은 달고 나왔어야 했다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수수하게 입고 나오라는 수녀님 지침을 곧이곧대로 따른 게 미련한 짓이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저쪽 다른 매장에서 판매에 열중하고 있던 마리아 자매에게 눈길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평소보다 옷을 더 수수하게 입고 나왔으며 질끈 동여맨 머릿수건과 앞치마가 정말 여느 종업원처럼 보였습니다. 행동도 종업원처럼 싹싹한 것이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쪽에는 손님이 바글바글하고 매상도 많이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봉사가 다 끝나고 결산모임 시간에 마리아 자매는 오늘 하루가 무척 신나고 즐겁고 보람찼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상도 헬레나 자매보다 세배나 올렸습니다. 그러자 다들 장사꾼으로 나서도 되겠다며 추켜 주었습니다.

 

헬레나 자매는 모든 면에서 자기보다 앞서가는 마리아 자매가 부러웠습니다. 솔직히 속이 쓰렸습니다. 레지오 마리아 모임에서 기도 생활이나 활동 봉사나 대인관계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학벌이 좋은 것도, 얼굴이 미인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돈 씀씀이가 펀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자매는 모든 행동이 자연스러웠으며, 진실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풍겨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궁금했는데 오늘 봉사 자리에서 이야기 나누어 보니 분명해졌습니다. 마리아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봉사가 힘들었어요. 그러나 이젠 깨달았어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나는 그저 나일뿐이에요.”

 

마리아 자매는 판매원처럼 낮아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그러자 기쁨이 저절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자 점차로 모든 생활에서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베테랑이란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헬레나 자매도 그날 아픔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남을 섬기는 것을 자기를 죽이고 없애야 하는 것으로만 알아듣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꺼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은 남을 섬기는 그런 자리에서 우리는 더 진한 자유를 체험한다고 합니다. 가식으로 처신했던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게 되고, 자기가 본래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고 깨닫게 되어 떳떳한 마음이 더 생겨난다고 합니다.

 

지금 내가 어느 자리에 있던지 그 자리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라 여기며 내게 기쁨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참으로 남을 섬기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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