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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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에 대한 답은 사랑뿐이다 -회개, 축복, 사랑-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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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8-03-09 ㅣ No.118853



2018.3.9. 사순 제3주간 금요일, 호세14,2-10 마르12,28ㄱㄷ-34


 


무지에 대한 답은 사랑뿐이다

-회개, 축복, 사랑-



사랑과 앎은 함께 갑니다. 사랑할 때 알고 아는만큼 보입니다. 어제 ‘무지의 악-약은 예수님뿐이다-’라는 강론 주제 였는데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즉시 무지에 대한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하느님 사랑과 자기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율법학자가 첫째 계명은 무엇이냐 물었는데 예수님은 둘째까지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늘 읽어도 새롭습니다. 하느님 사랑, 자기 사랑, 이웃사랑을 구별할 수는 있어도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드러나는 우선순위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우선입니다. 갈림없는 온마음으로 온정신과 온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우리의 모든 수행들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할 때 열정과 더불어 마음의 순수입니다.


피정중 오래전부터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를 위한 우선순위에 따른 3대요소, 1.하느님, 2.건강, 3.돈입니다. 첫 자리에 건강이나 돈을 놓고 하느님처럼 섬기고 돌보는 황폐한 인성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건강만, 돈만 챙기다 인생 마치면 얼마나 공허하겠으며 하느님 앞에 무슨 면목으로 설 수 있겠는지요. 하느님 사랑이 우선이고 다음에 건강, 돈입니다. 하느님이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가 될 때 온전한 삶입니다.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허무에 대한 답도 이런 하느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알고 삶의 의미도 주어집니다. 곧장 이어지는 자기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이 사랑의 은총이 자기를, 또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사랑, 이웃사랑을 정화하고 성화하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집착없는 깨끗한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참 사랑은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주의할 것이 사랑의 이중계명이 모두 ‘사랑해야 한다.’라는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살기위해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라는 둘째 계명중 ‘너 자신처럼’이란 말마디가 새삼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가려 자칫하면 자기 사랑을 잊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웃사랑에 앞서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으로 돌보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합니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자학하거나 소홀히 여기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존감 약한 사람은 하느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우선적으로 내가 얼마나 하느님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체험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존감 약한 마음이 병든 사람은 절대 하느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영혼으로 살기위해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보다 낫습니다. 평생공부하고 평생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고 이웃을 알게 되니 무지로부터 해방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이런 사랑이 아니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습니다. 


회개를 통한 축복이요 사랑의 선물입니다. 비상한 회개가 아니라 평범한 회개입니다. 끊임없이 회개에로 부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 호세아서가 부르심과 회개에 이은 축복의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사순시기 그대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오라.---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입술을 바치렵니다.”


에 이어지는 회개의 고백입니다. 마치 하느님께 돌아와 성전에서 미사와 시편성무일도의 공동전례를 거행하는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과표가 ‘회개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회개의 시스템’처럼 생각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기도를 통해 이뤄지는 회개요 회개를 통한 사랑의 회복입니다. 하느님 축복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다음 주님의 응답은 주님의 부르심에 회개로 응답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거룩한 공동전례를 통해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실감나게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하느님 사랑에 정통한 사랑의 신비가, 사랑의 시인인 호세아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리키는 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모두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이스라엘’인 우리가 이런 하느님 사랑을 체험할 때 치유되는 마음이요 하느님을, 나 자신을, 이웃을 사랑할 힘도 생깁니다. 바로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시편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통한 하느님 사랑의 은총입니다. 


허무에 대한 답도, 무지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빛만이 허무와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느님 사랑, 자신 사랑, 이웃 사랑의 삼중 사랑이요 사랑의 우선순위입니다. 


내적, 영적 성장도 결국은 사랑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사랑의 성장과 성숙과 더불어 무지로부터 벗어나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모두를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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