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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신부님복음묵상(관계가 깊어질수록 버려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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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7-16 ㅣ No.113264

 

요셉신부님복음묵상

"관계가 깊어질수록 버려야 하는 것"

2017년 가해 연중 제15주일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사귀어도,

 오랜 시간 함께 살아도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부부로 평생 살아도

남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짧게 사귀었어도 그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엔 많은 수수께끼가 있지만

관계란 수수께끼는 참으로 풀기

어렵고 신비롭기만 합니다.

어떤 분의 증언 중 위암으로

죽어가던 한 남자가 자신을

 부르러 온 어떤 영적인

존재들을 보고 두려워 떨며

아내의 이름을 목청이

 터져라 불렀고,

그 소리를 듣고 달려 들어온

아내의 목을 끌어안고

너무 무섭다며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입도 움직이지도

못했던 그 사람의 그러한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아마 그런 힘으로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에 노력했다면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만날 수 있을

만큼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 맺고

오기를 기다리시지만 어쩌면

우리는 다른 데 바빠서 그 시간을

다 흘려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의 깊이에 관한 비유말씀입니다.

하느님이신 농부가 말씀의 씨를

 뿌렸는데 어떤 사람은 길과 같아서

아예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돌밭과 같아서

처음엔 뜨겁게 받아들이지만

이내 식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잘 받아들이다가도 세상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의 욕망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관계의 깊이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그분과의 관계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인 것입니다.

반면 말씀의 열매가 맺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 같은 수준으로

맺는 거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삼십 배,

어떤 사람은 육십 배,

어떤 사람은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수준차이가

있을 텐데 이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관계의 깊이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관계에서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야할까요?

관계의 깊이에는 단순한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히든 피겨스란 영화는 1960년대

 러시아와의 우주개척 경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세 명의 미국

흑인 여성들에 대한 실화를

담았습니다.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컸었는데 그보다 컸던 것은

인종에 대한 차별이었습니다.

직장 내 유색인종만 사용해야 하는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흑인 여성으로

 미국 항공 우주국’(NASA)

취직한 것만으로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더 나아가 이들은 로켓을

지구 밖으로 쏘아 올리는데 백인

남성들보다도 훨씬 큰 역할을 하여

나사의 전설로 남게 됩니다.

흑인 여자들이 나사에 들어와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보통 흑인들과는 달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 노예제도가

폐지되고서도 노예생활을 꽤

오래 해 왔던 흑인들은 자신들의

주인이었던 백인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흑인은 백인에게 굽실거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차별을

받으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감히 넘어서지 말아야 하는

선 안에 머물렀습니다.

인종차별은 백인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지만 대부분은

자신들 스스로 스스로를

 차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위 세 명의 영웅들은

 자신들도 똑같이 세금을 내는

시민이기에 백인들만 가는

대학에 재판을 하면서까지

당당하게 입학하여 첫 여성

엔지니어가 되기도 하고 나사의

첫 여성 컴퓨터 부서 팀장이

되기도 하였으며 흑인 여성으로서

 나사의 최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수학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미 백인들과 섞이기

위해 자신들이 지니고 있었던

노예근성을 벗어던졌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비유하자면 이들은

 자신들을 아무 밭에나

내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백인들이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끼어들어오는 검은 색

여자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커피도 같은 포트에서 뽑아먹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그녀들이 쓰는

유색인종용 커피포트를 따로 놓고

화장실도 다른 건물까지 뛰어갔다

와야 하도록 만들어놓았습니다.

러시아가 우주선을 지구 밖으로

내보내 지구를 돌고 또 가가린이란

사람을 태워 최초의 우주인을

 만들어 내는 반면 미국은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미국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에게 뿌려진

그 씨를 싹틔우고 열매를 맺게

 만들 좋은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사의 최고 권력자였던 것입니다.

 “천리마는 그것이 천리마임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존재할 때

비로소 천리마일 수 있다.”

말이 있습니다.

케서린 존슨은 수학 및

그 분파인 해석학에 비범하고,

도로시 본은 업무 관리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비범하며,

메리 잭슨은 기계 공학 겸

엔저니어링에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인종이나 성에 상관없이

그녀들의 능력을 키워줄 방법은

그녀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돌아다니며

유색인종 화장실이란 명패를

해머로 쳐서 부숴버립니다.

유색인종이란 말이 들어간

모든 것을 백인들과 흑인들이

보는 앞에서 다 부숩니다.

자신이 권력을 지니고 있는 한

나사에서 유색인종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녀들 덕분으로

첫 우주인을 지구 밖으로

보냈다가 정확히 구조하여

러시아와 같은 기술을 가진

자리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관계는 마치 소금인형이
바다 깊숙이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인형은 바다 속 깊이

들어갈수록 자신이 녹아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지구인이 우주로

나가려면 최소한의 몸통만

남겨놓고는 다 떨어뜨려 가볍게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농부가 뿌린 씨가

땅 속에서 죽어 그 땅과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타인만 자신에게

 맞춰달라고 하면 관계는

그 거리에서 멈추게 됩니다.

관계는 아버지가

아드님 안에 계시고, 아드님이

아버지 안에 계신 것처럼

 서로상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명만

자신을 버린다고 해서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는 쌍방의 옷 벗음이요

쌍방의 죽음입니다.

씨 뿌리는 이의 비유

그분께서 이미 하느님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실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분이 싫어하는 것을

벗어던져야합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복어를 먹을 때 복어가

그 사람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독이 든 부분을 빼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을 가진 채 그분 안에

 들어가면 그분이 위험하게

되시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가진 채 그분과 친밀해지겠다고

하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는 그분께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분은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지만

그 죄를 계속 품고 있다면

그 죄까지 당신 품안에 받아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 말씀에서 길과 같은

사람이란 너무나 교만하여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옳다고 믿는

죄를 품은 사람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해도

조금만 잘못한

사람까지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

 더 옳기 때문에 말씀을 실천할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돌밭과 같은 사람이란

육체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육체의 감정은 마치 봄 날씨처럼

종잡을 수 없이 변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쁘고

뜨거우면 좋은 결심을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삶은

나아지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가시밭과 같은 사람은 버렸지만

덜 버린 사람입니다.

고민은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지는 사람입니다.

십일조를 내라고 하면 종교를

 바꿀 결심까지 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더 안타까워하시는

사람들은 위 두 부류가 아니라 거의

열매를 맺으려고 하다가 세상 걱정

때문에 포기하고 마는

이런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끊지 않으면 그 걱정

때문에 십일조나 이웃을 돕는

가난함의 행복은 느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삼구(三仇)’,

즉 세속-육신-마귀(교만)를 끊지

 않으면 당신과의 어떤 친밀한

관계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벗어야 할 옷이고

죽여야 할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건 이웃에게

다가가건 자신을 십자가에 버리지

않으면 친밀한 관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관계의 친밀함은 나를

벗어던진 만큼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주 만난다고 관계가 깊어지지 않고

내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얼마나 벗어던졌느냐에 따라 관계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런 관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맺히는 열매들입니다.

 어떤 신부님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인데 남편이 아내를

그렇게 구타했다고 합니다.

임신한 아내를 구타하여 아기까지

뱃속에서 검게 죽었고 유리창으로

내려쳐서 수십 바늘을

꿰매야 했다고 합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믿고 참았는데

한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 자매님은 자신이 이혼하는 것이

 이젠 절대적으로 남편의

책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혼 전 마지막으로

해외에 있는 성모님 성지에

다녀왔습니다.

고행의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신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힘을 얻고

공항에 도착할 때 남편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술과 도박을 끊고 며칠 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두 분은 아주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미국에서

 뇌종양인 아기에게 입을 맞추었는데

암 세포들이 거의 사라졌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관계 맺을

준비가 안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벗어던지지 못해서 상대도

움츠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

내 자아를 먼저 벗어던져야합니다.

먼저 내가 좋은 땅이 되어야

관계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친밀함은 내가

그리스도 앞에서 내 자신을

온전히 깨어버린 얼마나

비옥한 땅인지의 의해 결정됩니다.

나는 하느님에게나 이웃에게나

깊이 들어가기 위해 그 속에

몸을 던진 소금인형과 같습니다.

소금인형만이

바다와 하나가 됩니다.

 바다는 소금인형을 품고

금인형은 바다가 됩니다.

이런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많으면 세상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주님이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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