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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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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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18-07-21 ㅣ No.122122

묵상글을 쓰면서 한가지 갈증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나름의 공부를 하신분들입니다. 신학공부요 ..그러나 저는 신학교 가고 싶어도 못가고 두번이나 떨어진 사람입니다. 나름 화도 나지요 ..묵상글을 쓰면서 나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보고 그것을 나의 뼈속 깊이까지 체득을 하려면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나이에 신학 공부는 해서 무엇 할것이며 그렇다고 묵상글을 위하여서 공부를 한다 그것도 무모한 도전같습니다. 그래서 인천에 계신 수사 신부님께 문의하여보았습니다. 신학 공부는 어찌 생각하세요..그랬더니 단칼에 하지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유는 휩쓸리기 쉽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부족한 것은 신부님들의 강론 혹은 묵상글을 열심히 같이 묵상하고 그리고 거기서 나의 입장에서 한번 더 묵상하여 보는 것으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님도 30년 야인 생활하시다가 3년의 공생활 하시는데 그런데 그분이 공생활 이전과 공생활 이후로 나누는데 그런데 이전의 생활은 날품 팔이에서 공생활 이후는 선지자로 바로 바뀌었다고 볼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 공부를 꾸준히 해오시고 그리고 그분도 배움의 자세로 임하시고 겸손히 당시의 인문 사회 경제 법과 같은 것을 배우시고 그리고 신학도 배우시고 나름의 체계화를 하신것 같습니다. 공생활 이전과 이후에 갑자기 모든것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움의 자세 ..이것은 주님이 제자들을 교육하실때도 같은 방법으로 교육하셨을것 같습니다. 하늘나라를 말씀하실때 항상 주님은 겨자씨 혹은 섬김 나눔 겸손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공부하는 자세가 무엇을 알아서 공격하기 위한 것 혹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하느님의 향한 암,,사랑 ..그것이겠지요.. 천상의 것으로 가기 위하여서는 수없이 많은 도전이 있어야하고 그리고 겸손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전자 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저도 배울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면 할수록 어렵고 많은 도전과제가 많은 것을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느끼고 체감하고 그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부는 같은 패턴인것 같습니다. 배움이 겸손이며, 나의 고개를 숙이는 것을 알게해주는 것이고 그리고 새로운 지평을 넓혀주는 것이지요..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우리는 새로운 지평으로 주님이 인도하여 주심을 우리는 알게되었습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사람이 살아 있다가 죽으면 끝인데 주님은 그 지평을 넓혀주신 분이시지요 ..죽음과 부활 ..영혼이 있는 본질로서의 나로 ..우리에게 당신 친히 수고 수난 당하시면서 그것을 보여주신 분이시지요.. 그 지평의 넓힘을 알려면 낮은이가 되어야 겠습니다..오늘 묵상은 지평의 확장입니다.. 우리에게도 부르시고 있습니다. 저 넘어의 세계로 ..지평의 확장 .. 의탁하고 그리고 겸손히 당신의 길을 따라가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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