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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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새삼 이 이 나이에 - to the en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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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 [johnmaria91] 쪽지 캡슐

2022-05-18 ㅣ No.100935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 to the end, together

 

모든 것이 그녀의 입에서 비롯되었다.

아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내 입 때문에

고통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설화(舌禍)였다.

내 혀를 잘 못 놀린 까닭에 내 고통의 여정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생각을 생각으로만 간직하고 있었으면 무탈했을 것을

입 밖으로 발설한 것이 화근이었다.

 

2월 끝자락이었을 것이다.

둘째 딸 부부가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뜨자

슬픔의 나락에 빠져 있던 둘째 딸 부부의 집을 방문한 것은.

 

감정의 진폭이 우리 다섯 아이들 중 가장 큰 둘째의 슬픔은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거대했다.

 

심리 상담가인 본인이 상담가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약을 먹어도 하루 종일 슬픔 때문에 울음이 터져 나온다고 했다.

아니게 아니라 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아내와 내가 딸과 함께 머무는 동안에도

몇 차례나 눈물을 쏟았다.

 

본인도 그 슬픔이 주는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처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손바닥 뒤집는 일처럼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도 딸은 자기에게 주어진 슬픔을 이겨내려

몇 가지 행동 게획을 우리에게 털어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둘째는 작년에 베를린과 뉴욕 마라톤에 도전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다리에 문제가 생겨서 포기를 했다.

 

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딸아이의 결심에

내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

 

둘째는 매 해 자기 생일에 하프 마라톤을 뛰는데

올 해도 자기가 사는 곳에서

우리 집까지 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때 나도 결심을 한 것이다.

혼자 달리는 딸아이의 곁에서 함께 하겠다고.

 

'사랑은 함께 비를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계획을 아내에게 넌지시 전달했다.

그러면 딸 때문에 어두워진

아내의 마음도 조금 밝아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아내가 내 계획을 발설을 한 것이다.

나의 계획은 둘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둘째는 내게 달리기 전용 운동화와 양말을 보냈다.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나의 하프 마라톤 준비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트레드 밀 위에서 5 마일을 달렸는데

그런대로 뛸 수가 있었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뛰다가 10 마일 정도를 뛸 수 있을 때

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 옆에 바다를 끼고 Board Walk 가 있는데

Beach 9 스트릿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대충 11 마일이 되는 코스를 두 번 뛰었다.

 

두 번 다 추웠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트레드 밀 위를 뛰는 것과 길 위를 달리는 것은 많이 달랐다.

달리면서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밖에서 달리는 일에 따라오는 프리미엄 같은 것이었지만

온전히 내 다리로 대지를 밀고 나가야 하니

속도도 줄었고 다리도 더 피곤했다.

 

달리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내가 달리고 있는 길 옆,

대서양의 파도처럼 쉬지 않고 밀려왔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입에서 내 생각이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생각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것을-------

그것은 이미 딸과 세상에 대한 나의 약속이 되어버렸다.

 

5월 15일.

 

둘째의 생일에

나는 딸과 함께 딸네 집 앞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을 시작했다.

 

'to the end, together'

 

Brooklyn 다운타운에서 시작해서

Flatbush 애비뉴를 따라 우리는 아주 씩씩하게 달렸다.

며칠 째 계속되던 안개가 도심을 벗어나니 더욱 짙어지고

습도가 97 퍼센트나 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딸에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첫 발을 떼었다.

1 마일을 뛰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앞 서 뛰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가기보다는

누군가의 등을 보고 따라가는 일이 쉬운 법이니 말이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었다.

 

13.1 마일의 고단했지만 행복한 여정을 마치고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가족들이 나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아내는 근처에서 딴 장다리 꽃으로

꽃관을 만들어 월계관처럼 우리 머리에 씌워 주었다.

 

사랑은 비를 맞는 누군가와 함께 비를 맞아주는 일이다.

딸의 생일에 두어 시간을 함께 달리며

오로지 둘째 딸만을 위해

나의 시간을 헌정했다.

시간을 선물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준다는 말과 같다.

 

둘째 딸과 함께 달리며

서른일곱이 되는 둘째 딸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지금도 내 가슴이 따뜻하다.

 

누군가를 위해 내 자신을 선물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선물한 스포츠 시계에선

달리기를 마치자 'Congratulations! New Record.'라는 문구가 떴다.

생전 처음 달린 하프 마라톤에서 

나는 신기록을 세웠다.(처음이지만 신기록은 신기록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장작을 팰 때,

나의 몸은 이미 따뜻해지는 법이다.

 

딸과 함께 달리기 위해

연습을 하면서

나는 늘 딸을 기억했다.

 

그 순간순간이 

모두 다 그녀와 나를 위한 기도였고

또 우리 모두를 위한 선물이었음을.

https://blog.daum.net/hakseonkim1561/2713#none

 

 

 

출발.

딸네 집 앞

 

 

아내가 지영이와 나에게 장다리 꽃으로 관을 만들어 씌워주었다.

 

 

 

생일 축하해.

사랑해.

 

 

딸이 내 뒷모습을 찍었다.

 

 

환영나온 가족들과 함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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