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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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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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3-15 ㅣ No.110740

예전에 본당 신부의 5가지 유형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보좌 신부로 있으면서 일곱 분의 본당 신부님과 지냈습니다.

처음 함께 하셨던 신부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방에도 기도 방이 따로 있으셨고, 시간이 나시면 성당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본당의 모든 일은 사목위원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맡겨 주셨습니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강론으로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사목위원들도 신부님을 존경하였고, 순풍에 돛을 달듯이 함께 했던 2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보좌신부들을 믿어주셨고, 말씀만 드리면 새벽미사도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본당 신부님은 합리적이셨습니다. 중요한 일은 먼저 상임위원들과 상의를 하셨습니다. 수녀님들의 자리도 존중해 주셨습니다. 수녀님은 어머니처럼 신자들과 함께 지냈고, 성경공부도 함께 하였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 본당 신부님과 함께 산책을 하였습니다. 성당 주변을 걸어가면서 신자분들을 만났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도 본당 신부가 되어서 보좌 신부가 오면 함께 산책을 하였습니다. 교우들이 하는 가게도 소개해 주었고, 동네의 맛집도 알려 주었습니다.

세 번째 신부님은 열정이 대단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열정을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사목위원, 수녀님, 보좌신부는 그분의 열정과 박식함을 따라가기 바빴습니다. 본당을 신축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주택을 얻어서 본당 신부님과 방을 마주보면서 2년을 살았습니다. 저도 힘들었지만 본당 신부님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일을 신부님께서 주도하시기 때문에 일하기는 편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늘 피곤해 보이셨고, 새벽에 일어나시는 것을 힘들어 하셨습니다.

네 번째 신부님은 아주 규칙적이셨습니다. 정해진 시간이면 산책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산책을 하시면 대략 시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늘 가까이 하셨고, 제게도 좋은 책을 많이 권해 주셨습니다. 사제는 늘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하셨고, 신부님 덕분에 저도 책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전해 주시고 싶은 것이 많으셨는지 강론도 길었고, 간단한 질문에도 긴 시간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사제는 본당 재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고, 사제는 본인의 재정도 현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신부님은 과묵하셨습니다. 사목에 대한 결정도 아주 신중하셨습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약간 답답했지만 신부님의 과묵함은 사목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성주간의 긴 독서도 모두 노래로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신자들도 힘들어 했지만 나중에는 전례의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는 분명 노를 저어야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는 방향을 정확하게 정해야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 있습니다.

 

신부님들께서는 성격과 사목의 방법은 다르셨지만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나름대로 본당 사목을 하면서 느낀 것들이 있습니다.

전임 신부님의 사목 방침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6개월은 지켜보는 것입니다.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임 신부님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구에 230개의 본당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사목 방침에 따라서 열심히 생활할 것입니다. 중요한 덕목은 믿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권위는 있지만 권위적인 사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제들이 2000년 동안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영광과 기쁨, 명예와 권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만을 따를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면서 ‘5처와 6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5처에서 우리는 길을 가던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것을 묵상합니다. 6처에서 우리는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드리는 것을 묵상합니다. 사제들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다면, 시몬과 베로니카의 삶을 따라갈 수 있다면,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본당 공동체는 주님의 사랑이 가득할 것입니다.

 

주변을 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형들이 있는데도 늙으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가 있습니다. 전날 술을 많이 먹어서 출근하지 못한 동료의 일을 대신하는 분도 있습니다. 내가 준비한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쁘게 받아들이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만 마음에 앙금이 있으면 하면서도 짜증이 나고, 괴롭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2000년 동안 시몬을 생각하고, 시몬의 희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누군가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 그것이 주님의 십자가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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