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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3/ 혼신을 다해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랑의 설교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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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6-12 ㅣ No.112577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축일(17.6.13)
지혜 7,7-14; 에페 4,7.11-15; 마르 16,15-20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San Antonio da Padova





 

혼신을 다해 자신을 쏟아 붓는 사랑의 설교

 

성 안토니오는 1195년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페르난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는 신앙심 깊은 부모와 리스본 주교좌성당 학교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여, 1210년 5월 아우구스티노 참사 수도회에 들어갑니다.

1219년에 사제로 서품된 그는 1220년 1월 16일 모로코에서 순교한 작은형제회의 베르나르도와 그 동료들의 유해를 성 십자가 성당에서 목격하고, 순교를 열망하여 작은형제회로 옮깁니다. 당시 아우구스티노회는 이교인들을 위한 선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1221년 순교를 갈망하며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 병에 걸려 되돌아오게 됩니다.

1221년 돗자리 총회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만난 그는 포를리 근처의 은둔소에서 생활할 허락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설교와 학식이 드러나 설교 책임자로 임명되고, 프란치스코로부터 처음으로 신학 교수란 칭호를 받아 볼로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의 지혜를 전하는 그를 존중하여 ‘주교’라 부르기도 했지요.

안토니오는 해박한 성경지식과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설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의 탁월한 설교와 언변은 불같았고, 군중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카타리파와 알비파 이단에 맞서 설교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설교와 성사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안토니오의 설교로 파도바 전체가 개종한 일은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설교 때문에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설교를 말로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행동이 뒤따를 때 입으로 하는 말은 효과가 있습니다. 입은 다물고 행동으로 말합시다.”(강론, 1,226)

그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한 것을 선포하는 사랑의 설교가였습니다. 그는 갇힌 이들을 석방시키고,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또한 혼신을 다하는 사랑으로 빚진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1231년 6월 13일 그는 병이 악화되어 캄포 산 피에로에서 파도바로 돌아가는 길에, 36세의 나이로 아르첼라의 클라라 수녀원에서 죽음 자매를 맞습니다. 그리고 이듬 해 시성되었습니다. 교회는 기적의 성인, 파도바의 성인을 교회학자, 복음적인 박사로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한량없는 보물을 주는 지혜의 영’(지혜 7,7.13) 안에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던”(마르 16,15) 성 안토니오의 삶을 본받아 실천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른”(에페 4,15) 성인의 길을 따랐으면 합니다. 그의 기적이나 탁월한 설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하느님 뜻에 대한 순종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 거룩한 덕행이었음을 기억하는 오늘이길 바랍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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