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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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신부님의 살레시안 묵상] 사랑스런 존재, 매력적인 존재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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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hunter14] 쪽지 캡슐

2017-03-24 ㅣ No.11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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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존재, 매력적인 존재가 되십시오!

 

 

현대 가정 공동체의 어두운 현실을 바라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공동체 구성원 각자가 사랑스런 존재, 매력 넘치는 존재가 되십시오!”

 

 

예수님께서도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코복음 1228)라고 묻는 율법학자에게 결국 사랑이 전부라고 가르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코복음 1229~31)

 

 

예수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를 묵상하면서 사랑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더군요. 사랑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로 노력하는 것은, 애써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혈안이 됩니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내가 먼저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내가 나를 잘 가꾸고 성장시켜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탄성이 나올 정도로 빛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변사람들이 앞 다투어 나를 존경하고 흠모하도록 나를 성장시킬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내 곁에 있고 싶어 하는 눈부신 존재, 빛나는 존재로 변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사랑스런 존재, 매력적인 존재가 되라니, 어떤 분이 그러실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사람, 매력적인 존재? 말은 쉬운데 그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입니다. 백번 천 번 거울 쳐다봐도, ‘원판불변의 법칙이라고 현실이 안 따라주는데 어떡합니까?”

 

 

여기서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은 성형 수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피부미용을 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면을 갈고 닦으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아름답게 장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따뜻한 사람, 편안한 사람,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반찬투정하지 말고 뭐든 잘 먹고, 무엇보다도 잘 씻고, 주변 상황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더라도 불평불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 사랑스러운 존재, 매력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결혼하신지 30, 40년 지나신 분들 곰곰이 따져보면 깜짝 놀라실 일이 한 가지 있을 것입니다. 연예시절, 그리고 신혼 초에는 그렇게 좋았지 않았습니까? 같이 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몰랐지 않습니까? 때로 그분이 옆에 없으면 마음이 너무 허전하고, 시간도 더디 가고,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랑스러웠던 분의 호칭도 바뀌었습니다. ‘그분에서 그 인간으로. 그리고 30, 40년 전에는 그분이 옆에 없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그가 옆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랍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인가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내가 먼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미움은 어쩌면 지나친 기대나 집착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익숙한 그로부터 결별해야 할 때입니다. 크게 넓게 바라보면 가족도 부부도 사실 어차피 타인입니다. 타인의 삶에서 과감히 뛰어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갈라서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 안의 혁명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나와 철저하게 맞지 않는 그를 바라보는 내 시각의 대대적인 전환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를 고통과 십자가의 근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연구대상으로 바라보면 좋을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 행동들 앞에서 분노하고 짜증내기보다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 고민하고 연구해나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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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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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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