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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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자매’님에게 보내는 가을날의 주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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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21-01-15 ㅣ No.98813

       ‘모니카 자매’님에게 보내는 가을날의 주말편지


모니카 자매’님.

서울 관악구 삼성산의 낮은 허리와 관악산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이,
함께 한강을 향해 흘러가는 도림천의 가을 아침 시냇물은,
유난히도 맑고 차갑습니다. 지난여름은 계속되는 열대야 때문에
산속의 우거진 숲과 새들도 밤이면 제대로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가을 기운이 창틈으로 솔솔 발을 들이미는 요즘,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을 조용히 읊조리며,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23살 연하의 여인을 사랑하여 작곡했다는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듣습니다.
이 가을 삽상(颯爽)한 아침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시와 음악입니다.

인연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사용해온 용어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나와 직접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인’이고,
그 외에 간접적으로 맺어진 관계는 ‘연’이라는 것입니다.

오래전 시론 강의에서 만난 것이 연이 되어 알게 된
모니카 자매님은 늘 우수에 차 있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고민을 가슴 한구석에 담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추측을 해보았답니다.

그때가 벌써 3년이 지났나 봅니다.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됐을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법학 공부를 하고 있는 외동 따님에게
편지를 전해주라는 부탁을 하시면서 저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안부 편지와 조금의 용돈이 들어 있었겠지요.
그리곤 자매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놓았던 눈물이,
동공에 그렁그렁 맺혀 두 뺨으로 흐르기 시작했지요.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독일을 거쳐 몇몇 나라의 국경을 넘은 버스가 빈의
외곽 숲속에 자리 잡은 관광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호텔 로비에서 모니카 자매와 꼭 닮은 따님을 만났을 때,
전 모니카 자매님을 이국땅에서 뵙는 착각을 했답니다.

14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모니카 자매님은 따님의 학비를 벌기 위해 남해의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갔다는 사실을 짐작으로 알았습니다.

모니카 자매님.
설악산의 가을이 서울을 거쳐 계룡산에서 잠깐 머물다가
지금은 내장산 서래 봉에서 단풍을 주제로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 남해에도 가을 소식은 이미 도착했겠지요.

먼 타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동딸의 학비 마련 때문에,
모니카 자매님 혼자서 밤낮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한숨 속에서
해풍과 싸우면서 눈코 뜰 새 없이 고된 일과 싸우고 있을
일상의 모습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고교시절 애독했던 모윤숙 시인의 장편 산문집 「렌의 애가」를 보냅니다.
오늘 하루만은 그 시절로 돌아가 순수함을 꿈꾸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권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행복 예습」을 함께 보내드리니
마음의 고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시고 시간이 되는 대로
차근차근 행복의 참다운 의미를 한 땀씩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삶을 굳세게 헤쳐나가는
모니카 자매님께서는 언젠가 당신이 손수 만들어 놓은
 ‘행복의 정원’에서 편히 쉬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가호가 계속되길 빌면서.

권영춘(바오로) 시인·수필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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