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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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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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10-10 ㅣ No.115325

 

2017년 10월 10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제1독서 요나 3,1-10

1 주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루옷을 입었다.

 6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

7 그리고 그는 니네베에

이렇게 선포하였다.
“임금과 대신들의 칙령에

따라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9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복음 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자매님께서 제게

 가까이 다가와 말을 겁니다.
“저기요.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영이 너무나 맑으세요.”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도 이렇게 말문을 트

면서 “도를 아십니까?”라는

식의 물음을 하는 경험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 자리에서 화를 내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얼른 가던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조상님의 큰 기운이 느껴집니다.”

라면서 계속해서 말을

 붙이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예전에 했던 방식으로

“저 가톨릭 신부입니다.”

라고 말한 뒤에야 그분과의

짧은 만남을 마칠 수 있었지요.
사실 그 후는 체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잘 되는 방법이

있다면서 조상님께 제사

 비슷한 것을 해야 한다며

금품을 요구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 때문에’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길까요?

조상의 덕을 받아서,

부적을 달고 있어서,

어떤 특정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등등 외부의 이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 안에서

이유를 찾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바라보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만 문제의

해결을 찾는 경우는 늘

불평불만의 연속입니다.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친구 때문에, 심지어 하느님

때문에 라는 말들로 책임을

외부에 묻는 경우 분명히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무지 해결해주지

않았다면서 다시는 성당에

가지 않겠다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다면 주님의

일은 얼마나 하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은

 남들보다는 더 열심히 살았다면서

억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마르타는 열심히

예수님을 시중들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의

집에 가시겠다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이 여인이 부탁해서

자기 집으로 모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중을 들면서 불평불만을

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일을

돕지 않는 마리아라는 동생의

모습입니다. 또 하나는 이 동생이

 언니를 돕도록 말하지 않는

주님께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르타의 원래 목적은

엇이었습니까? 그저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시는 것뿐이었습니다.

집에 모시는데 있어 마리아나

예수님의 모습이 불평불만의

원인이 되지 않습니다.
일만 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다보니 첫 마음을

 잃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래서 원하는 대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불평불만의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누구에게 문제일까요?

마리아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일까요?

바로 마르타 본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몫에 충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남을 바라보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불평불만을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한 첫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해결을 외부에서 찾지 마십시오.

바로 내 안에 그 답이 있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테디 루즈벨트)

아이의 간절한 기도.

"명절 연휴가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기나긴 명절

연휴가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길게

느꼈지만 지나고 나면

너무나 짧게 지나지 않습니까?

아마 월요병과 마찬가지로

명절 후유증이 대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 역시 명절 연휴 기간이라

성지에 순례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잔뜩 계획을 세웠습니다.

실제로 할 것이 좀 많았습니다.

방송 녹음도 해야 하고,

성지에서 발행하는 묵상집도 써야 하고,

앞으로 있을 강의 준비도 해야 했습니다.

기간이 많으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절반 정도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순례객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또한 저를 찾는 손님들이

꽤 많이 오시더군요.
시간이 많이 있으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 없어도 집중하면서

노력한다면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튼 명절 연휴도 끝났으니,

오늘부터 집중해서 해야 할 일들에

 성실하게 임했으면 합니다.

단,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인상 쓰지 말고,

밝게 웃으면서 하자고요.

긴 연휴가 드디어 끝나고...

검은색 숫자가 왔습니다. ㅋㅋㅋ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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