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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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4 화/ 무엇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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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3-13 ㅣ No.110718




사순 2주 화, 마태 23,1-12(17.3.14)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Denunciation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무엇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강조하면서, 신앙에 바탕을 둔 바른 정치를 펴라고 지도층에 권고합니다. 종교의식에는 열심이었으나, 도적과 짝하고 뇌물에 취하고 사례금을 강요하며, 가난한 이들을 학대하던 귀족과 부유층에게 이런 권고는 매우 거슬렸을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희생제물이나 종교의식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과 하느님의 자비심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회개하는 인간을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야말로, 나약하고 악에 물들기 쉬운 인간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임을 굳게 믿었지요.

인간과 세상을 바꾸는 요소와 힘은 매우 다양합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이루려는 철학, 공생과 공유와 공감을 이루려는 바른 사고와 제도, 그에 필요한 재원과 부의 공평한 분배, 기회 균등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요. 그러나 이사야의 가르침처럼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비와 정의의 실천입니다.

사랑과 정의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은 정의의 열매입니다. 다시 말해 자비나 용서란 무조건 죄를 덮고 넘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를 저지르고 다른 이들에게 심각한 신체적, 물질적, 인격적, 정서적 피해를 가한 사람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려면, 먼저 죄를 통감하고 인정하며 회개해야 새롭게 변화됩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 위선을 버리라 하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질책을 받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우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자기를 과시하려고 잔칫집 윗자리와 회당 높은 자리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습니다(23,3-7 참조).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신앙은 위선입니다. 실천 없는 말만으로는 인간도 세상도 변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 해도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을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떤 경우에도 그러한 변화는 탐욕의 추한 모습만을 남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어떤 죄와 어둠 상황에서도 용서해주시고 정의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그 힘에 자신을 맡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비를 바라는 이상으로 죄를 인정하고 불의를 물리쳐 정의를 세움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의 두 발로 참 행복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또한 내 뜻을 내려놓고 나의 움직임 안에 말씀이 작용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실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를 실천하고, 위선의 탈을 벗어버리고 언행일치를 이루는 거룩한 변형(transformatio)의 날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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