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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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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3-06 ㅣ No.118785

 

2018년 3월 6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다니 3,25. 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복음 마태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의 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특별히 자신의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고 또한 따지듯이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참으로 당황스럽지요.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화가 나면서 감정이 폭발하게 됩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대방이 되고,

 앞으로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이렇게 감정의 대립을 겪게 되면

다시 보기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래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특히 상대방의 말에 강하게

 반박하고 상대방의 잘못한

행동에 대한 증거가 많을수록

말투는 더욱 더 부드러워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서로가 자신의 감정만을 내

세우면서 의견의 일치를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상대방을 더욱 더

사랑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만을 내세우게 되면

그 안에서는 어떤 긍정적인 모습은

 나올 수가 없으며 그래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게 됩니다.
인터넷 댓글에서

왜 함부로 말할까요?

 상대방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상대방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함부로 댓글을

달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가게에 어머니와 함께 갔는데

제가 정말로 먹고 싶은

사탕이 있었습니다.

사달라고 졸랐지만 어머니께서는

꿈쩍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생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청나게 혼나기만 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필요한 물건이

있었고 이것이 왜 필요한지를

어머니께 설명을 자세히

드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고 제 뜻대로 해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에게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냐는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용서는 그냥

‘그래 내가 용서하는 거야.’

라고 말을 하고 다짐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생각으로 대한다면 절대로

용서의 단계에 다다를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용서를

하지 못할 이유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큰 사랑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만 탈렌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는

속 좁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진정한 힘은

싸움으로 얻는 게 아니라

지혜를 통해 얻음을,

진정한 강인함은

감정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무게를 견디는 것을,

진정한 용기는

사랑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을

(덩훼이원)


감정의 대립보다는 침묵 안에서

서로 안아만 주어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만큼은"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주는 말’ 중에서)

오늘 만큼은 행복하자.

사람은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결심한 정도만큼 행복해진다.

주변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자.

무엇이나 자신의 욕망

되로만 하려하지 말자.
오늘만큼은 몸을 조심하자.

운동을 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자.

몸을 혹사시키거나 절대 무리하지 말자.
오늘만큼은 정신을 굳게 차리자.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배우고

나태해지지 않도록 하자.

노력과 사고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책을 읽자.
오늘 만큼은 남이 눈치

 못 채도록 친절을 다하자.

남모르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해보자.

 정신 수양을 위해 두 가지 정도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자.
오늘 만큼은 기분 좋게 살자.

남에게 상냥한 미소를 짓고

어울리는 복장으로 조용히

이야기하며 예절 바르게 행동하고

아낌없이 남을 칭찬하자.
오늘 만큼은 이 하루가

보람되도록 하자.

인생의 문제는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하루가 인생의 시작인 듯한

기분으로 오늘을 보내자.

당신이 있어 참 좋은 오늘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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