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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받을 어린아이들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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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2-25 ㅣ No.110331


 

 

 

상처 받을 어린아이들


- 윤경재 요셉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마르10,14~16)

 

 

 

 

정신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외향성과 내향성입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내향적인 사람은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할 때 에너지가 줄어들며 혼자 있는 조용한 곳에서 힘을 얻고 보충한답니다. 이에 반해 외향적인 사람은 상호작용이 있는 사회적 상황과 외부 환경에서 힘을 더 얻는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는 많이 다릅니다.

 

흔히 이 두 성향을 오해해서 외향적인 사람이 리더십이 많고 요즘 사회에서 더 살아가기 좋다고 생각하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흔히 내향적인 사람과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을 동질로 오해하는데 둘은 전혀 별개의 성격입니다. 수줍음은 행동양식으로 사회적 행동에서 이유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내향성은 욕구입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보충시키려고 자신의 공간을 찾는 것이며 에너지가 충분할 때는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외향적인 사람도 수줍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줍음은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친구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과 만날 때마다 에너지가 소모되니 괜히 낭비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다가갈 때는 먼저 인사를 건네보세요. 그리고 얌전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상대방에게 함께 있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세요. 그가 개인공간을 확보할 여유를 주면 그는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한 뒤 다가와 조금씩 에너지를 쓰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 알맞게 상대방 에너지 소모에 맞추어 대화하면 됩니다.

 

내향성 성격은 자극에 예민하기 때문에 어려서 쉽게 흥분해 난감한 체험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자연히 그런 자극을 억누르고자 형성되었답니다. 외향성 성격은 자극에 둔감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스스로 흥분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에 타인의 기를 빼앗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향성 성격인 사람이 외향성 성격인 사람들과 지내면 무언가 손해보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되어 만나기 꺼려진다고 합니다.

 

자신의 내향성 성격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면 기운을 낭비하는 것을 막고 바로바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자신만의 비법을 마련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명상수련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 두 성향과 별도로 구분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신경증은 자존감이 낮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며, 쉽게 상처받고 예민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병적 증상으로 실제로는 내향성과 관계가 적습니다.

 

아이의 기질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금방 익숙해지는 아이는 외향적이고, 한참을 살피고 익숙해져야 다가가는 아이는 내향적인 성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융도 인정했듯이, 전형적으로 내향성이거나 외향성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은 내향성을 부정하고 외향성을 키우는 쪽으로만 발달되어 있습니다. 내성적인 아이들의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어른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내향성은 사색과 관조를 통해 사물과 조용히 관계 맺는 능력입니다. 내향성은 나만의 관점을 앞세우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줌으로써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내향성이 인간의 마음 안쪽으로 향하는 성찰의 길이라면, 외향성은 타인의 영혼으로 다가가 닿으려는 표현의 방향성입니다. 그 두 가지가 모두 자신의 길을 찾을 때 인간의 심리는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안수받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런 부모들은 일단 외향적 성격인 사람들입니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수급 받는 체험을 했기에 자기 아이들에게도 에너지가 충분히 전달되기를 바란 행동입니다. 또 그들은 수줍음을 타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어린아이의 성격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한꺼번에 몰려드니 바쁘고 귀찮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 부모보다 상처 받을 어린아이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 중에는 수줍어하는 아이, 외향적 아이, 내향적 아이가 골고루 섞였을 터인데 만약 ‘거절 체험’을 한다면 그들이 겪을 마음의 상처는 무의식에 깊숙이 저장됩니다. 어릴 적 체험은 여과 장치가 없어서 곧바로 기억의 창고에 저장됩니다. 그러다가 자칫 병적으로 발현할지도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모든 책임을 자기에게 돌리는 속성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학대하는 이유가 모두 자신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사소한 의견충돌이나 싸움을 해도 자기 탓이라 여기는 게 아이들 속성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굉장한 광경에서 모처럼 부모가 부탁을 했는데 거절을 당한다면 그런 상황을 이해하여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로 남을 것입니다. 그중에 몇몇은 신경증으로까지 악화할 수도 있습니다.

 

탁월한 치유자이신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하나 배울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지식이 늘어 갈수록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넓고 깊이 이해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신앙인은 옛 선배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해서 우리 나름대로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복음서 말씀과 주님의 충정을 새롭게 알아듣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시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복음을 새롭게 선포하여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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