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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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금요일]첫째가는 계명 (마르코 12,28ㄴ-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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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7-03-24 ㅣ No.110956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마르12,28ㄴ-34)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29ㄴ~31)

 

마태오 복음 12장 29절은 소위 '셰마 본문'이라고 하는 말씀 가운데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희랍어 '아쿠에 이스라엘'('Akoue 'Israel)은 히브리어 '세마 이스라엘'(shema Israrael)을 직역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 신조로서 신명기 6장 4~9절과 11장 13~21절, 민수기 15장 37~41절을 포함하며, 유대인들은 이것을 아침,저녁으로 암송하였고, 이것을 양피지에 써서 작은 통(성구갑)속에 넣어 앞 이마나 팔에 매어달아 언제든지 꺼내어 읽을 수 있도록 한 중요한 계명이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6,4~6) 

 

"Hear, O Israel ! The Lord is our God, the Lord alone !  Therefore,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 Take to heart these words which I enjoin on you today."  

 

'이스라엘아, 들으라!' 본문으로부터 그 유명한 '셰마'(shema; hear)가 시작된다. 

 

본절은 6개의 단어 구성되어 있으며(세마 이스라엘 예흐와 엘로헤누 예흐와 에하드; shema israel yehwa ellohenu yehwa ehad; hear, o Israel the Lord is god, the Lord alone), 그 첫 단어가 '들어라' 뜻이 있는 '셰마'이다. 따라서 본 단락은 이 첫 단어를 따라 '셰마'(shema)로 불리워진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셰마는 원래 6단어로 구성된 신명기 6장 4절만을 일컬었지만, 후에 5절 포함되었고, 더 나아가 본문부터 시작해서 한 단락을 이루는 4~9절까지를 일컬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6장 4~9절(제1부분)에 이어 신명기 11장 13~21절 (제2부분), 민수기 15장 37~41절(제3부분)도 셰마에 포함하게 되었다. 

 

제1셰마에 해당하는 신명기 6장 4~9절 유일신 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부터 시작하여 항상 계명을 기억함으로써 주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한다는 명령과 자녀에게 그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명령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추가된 신명기 11장 13~21절 이 명령에 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축복과 불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저주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민수기 15장 37~41절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라는 규정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 랍비들은 신명기 6장 7절에 근거하여 이 셰마 본문을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는 의식을 제정했으며, 이 셰마 규정의 준수 여부는 진실된 유대인임을 확인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이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이스라엘의 매일의 고백과 모든 이단 종교와 우상 숭배에서 스스로 구별되는 유대 종교 교리의 근간이 된다. 

 

'유일한'으로 번역된 '헤이스'(heis; one)는 단순하게 수사(數詞)로서 '하나'라는 뜻을 갖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유일신(唯一神)사상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사랑과 순종의 대상이 되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히시는 본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즈카리아서 14장 9절 '그리고 주님께서 온 세상의 임금이 되실 것이다. 그날에는 주님이 한 분뿐이시고 그 이름도 하나뿐일 것이다.'라는 말씀에 나오는 '그 이름도 하나뿐일 것이다'(우셰모 에하드; ushemo ehad)란 표현에 근거하여 '에하드'(하나 뿐; one)를 주님의 이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라 본문을 번역하면,'주님은 우리 하느님이시며 '하나 뿐'인 주님이시다'가 된다.  '하나 뿐'이라는 고유 명사를 이름으로 가진 주님이시라는 의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에하드' 주님의 이름으로 보지 않고, 새 성경을 포함해서  대다수 성경과 같이 이것을 주님을 서술하는 '하나'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속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문대로 직역하면, '주님 우리 하느님 주님 하나'이며,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한다. 전반부는 '주님은 우리 하느님이시다' 내용이고, 후반부는 '주님은 한 분이시다'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을 종합하면, 본문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알리는 구절이 된다. 

 

이런 의미를 갖는 본문에 근거해 볼 때, 성경은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다신주의 (多神主義; Polytheism) 뿐만 아니라 혼합주의(Syncretism)을 일체 배제하며, 실제로 모든 종류의 자연신론(自然神論)을 배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철학적인 사상에 의해 추상적으로 만들어내는 신, 예를 들어 '절대 존재', '절대 이데아'와 같은 개념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은 오직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크신 능력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절대적인 살아계신 하느님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새 성경에는 본문이 본절의 후반부에 있지만, 원문에는 본절의 맨 처음에 나온다. 

 

'웨아하브타'(weahabtha; therefore(and) you shall love; 너희들은 사랑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단어에서 '와우'(wau; therefore; and) 접속사 시작한다는 사실은 우리 하느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내용의 앞 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하느님은 세상의 수많은 다른 헛된 우상이 아니고, 오직 한 분이신 주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이다. 

 

한편,'웨아하브타'에서 '아하브'(ahab; love)동사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신명4,37; 11,1)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호세아서의 경우 남편과 아내의 사랑(호세3,1),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호세11,1)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바로 '아하브'동사가 매우 실제적인 차원의 사랑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에서 특별히 구별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이 익히 알고 있는 평이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단지 종교적인 관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가운데서도 친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출애굽 이후 시나이산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 관계를 맺은(탈출19,5.6; 24,1.8)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현존하고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당신을 드러내어 주셨으며,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제를 사랑하듯이,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또는 자신의 연인처럼 사랑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신명기 6장 4절에서는 주 하느님을 '우리 하느님'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반하여, 6장 5절에서는 '너희 하느님'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이 이스라엘 공동체와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 대한 계시라면, 본문은 그 계시된 하느님께 대한 각 개인의 인격적 반응에 대한 촉구라고 말할 수 있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 우베콜 메오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 wubekol meodeka)에서 3번이나 나오는 전치사 '뻬'(be)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 가지고'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이란 뜻의 '콜'(kol)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목숨을 다하고 너희 최선의 힘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카르디아'(kardia)는 히브리어 '레바브'(lebab)를 번역한 단어인데,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 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che; soul)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프셰카'의 원형 '네페쉬'(nepesh)는 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 '너의 온 영혼을 다해'(with all your soul)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신명기 본문에는 나오지 않고, 영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 정신성과 정신력을 의미하기에 '목숨을 다하고'를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마태22,37참조)로 세분하여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요한4,24). 

 

끝으로 '힘'으로 번역된 '이스퀴스'(ischys; strength)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오데카'(meodeka)의 원형 '메오드'(meod)는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은 각각으로도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표현을 중복시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태도와 그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을 볼 때,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 가운데 결코 자신의 것이라고 하느님 대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全心), 전영(全靈), 전력(全力)'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6)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것이 네 마음 (위)에 있게 하라'(take to heart;  be upon your hearts)이다. 

 

여기서 '그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또한 '마음'에 해당하는 '레바브'(lebab)는 신명기 6장 5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인격(人格) 가리킨다. 

 

따라서 말씀이 마음에 있게 하라는 말은 단지 말씀의 내용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과 의지와 감정에 언제나 말씀이 반영되어 있는 인격을 소유하여 실제로 자신의 삶속에서 주님의 향기를 풍겨내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 14,21)

 

그리고 '새겨 두어라' 번역된 '웨하유'(wehayu)에 쓰인 동사는'~이다'란 상태를 나타내는 '하야'(haya)동사로서, 이것은 말씀이 마음 위에 있는, 즉 말씀이 인격 위에 반영되는 삶이 일시적인 상태로 끝나는 일회적 행위가 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항상 지속되는 상태에 있어야 함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에'로 번역된 '알 레바베카'(al lebabeka; 너의 마음에)라는 표현은 신명기 5장 22절 나온 '알 셰네 루호트 아바님'(al shene luhoth abanim) '두 돌판위에'라는 표현과 대구를 이룬다.

 

우리는 이 두 구절의 대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두 돌판에 율법을 새겨 주신 행위가 실제로는 그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마음 위에 있기를 원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수 있다 (예례31,33참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으로서 십계명의 둘째 부분, 즉 사람에 대한 4~10계명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을 하느님 사랑의 연장선상에 두어 율법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웃'에 해당하는 '플레시온'(plesion; neighbour)는 인종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살거나 혹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까지도 다 포함된다(루카10,25~37).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웨아하브타 레레아카 카모카'(weahabtha lereaka kamoka;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이다. 

 

여기서 '이웃'으로 번역된 '레레아카'(lereaka)가 '사귀다'라는 뜻의 '라아' (raah)에서 유래하여 '벗', '친구'(욥기6,14), '동료'(즈카3,8)로도 번역되는 '레아'(rea)에 전치사 '레'(le)와  2인칭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너의 벗' 혹은 '동료들'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 본문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레위기 19장 34절에서는 함께 머무르는 객, 이방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으로 볼 때(레위17,10.12.13.15), 넓은 의미에서 본문의 '이웃'이란 계약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다 포함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사랑하다'라는 뜻의 '아하브'(ahab) 동사는 보통 전치사 없이 목적어를 취한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를 향하여'라는 의미를 지닌 전치사 '레'(le)가 목적어 앞에 붙어 있어서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즉 '레'(le)는 상대방에게 방향을 맞추고 있는 자세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에 '~에게 도움이 되어 주다', '~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어 주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사랑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해 언제 어디서나 도움과 사랑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를 말한다. 

 

또한 본문은 사랑해야 하는 깊이와 정도에 따라 '카모카'(kamoka) 즉 '너 자신처럼', '네 자신과 같이'(as yourself)이라는 말을 쓴다. '이웃'이 곧  나 자신과 같다는 의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경우라면 자신의 유익을 앞세우지 말며, 나에게 쏟아 붓는 걱정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과 관심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만유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첫째 가는 계명에 이어지는 둘째 가는 큰 계명(마태 22,39.40; 마르12,31)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웃의 범위를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분명히 정해 주셨다(루카10,25~37).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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